나는 100%의 에너지로 살고 있을까.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늘 무리하며 일을 했고 매일 내가 가진 에너지보다 더 많이 소진했다. 내가 가진 것이 100이라면, 늘 150 이상의 몫을 하려 애쓰며 살았다. 힘이 들긴 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나 자신만 잘 챙기면 되는 문제였다.
내 책을 읽고 난 지인이 글에서 치열함을 느꼈다는 후기를 전했다. 치열하게 살아온 건 사실이지만 글에서도 느껴진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게 드러나는구나. 나의 고민과 실행, 실패와 성공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그 치열함이 느껴지는구나. 이 정도는 기본값인 줄 알고 살아왔기에 오히려 잘 몰랐던 것 같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큰손 노희영’에서 노희영님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나의 치열함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대담함과 치열함이 느껴진다. 일에 미쳐 있던 열정, 어떻게든 끝까지 해내고자 하는 집념이 그녀를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뭐든 밀어붙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나를 갉아먹고 태워 소진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내 안에 내공을 쌓고 힘차게 나만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방향이어야 하겠지.
적당한 치열함이란 존재할까.
이호선 교수님은 밀레니얼 세대를 z세대와 구분 지어 설명한다. 부모가 처음 경제적 호황을 누린 세대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본에 눈을 뜬 첫 세대, 브랜드와 함께 성장했기에 브랜드 소비를 즐기고 놓지 못하는 세대, 유행에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 강박이 있고 그 힘으로 팬덤을 만들어낸 세대. 나만의 특징이 아닌 시대와 세대의 특성을 읊어내는데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내 마음에 남은 표현은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세대”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거나 무언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불안과 공허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가 내 세대의 특징이라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뼈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낳든 아니든,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각자의 삶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주변 친구들만 봐도 이건 나만의 특징이라 볼 수 없다.
하지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치열한 태도는 지나치면 나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지만,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나를 객관화하고 동시에 나다움을 찾게 만들어주는 힘이 될 수도 없다. 치열함이 없었다면, 숱한 고민과 도전들은 힘을 받지 못해 공중에 다 흩어져 버렸겠지.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 전 한 시간이 남아 좋아하는 카페에 들렀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앞으로의 계획을 가다듬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시간이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다. 나에게 여유를 주는 정리와 정돈의 시간이고 나만의 호흡을 가다듬는 과정이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내 에너지를 한 곳에만 집중시킬 수 없게 되었다. 100중에 일부는 아이에게 떼어 주어야 하고, 나머지는 일과 집안일에 균형 있게 분산 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에 있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하는 자책과 의심을 한 적도 있다. 예전엔 150을 써서 일했는데, 남들은 적어도 100은 하는데, 나는 70밖에 쓰지 못했는데도 이미 지쳐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속상할 때도 있었다.
나를 더 갈아 넣는 방법들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긴 호흡으로 70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나의 70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아이가 성장하며 70이 80으로, 90으로 차오르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겠지. 그 순간들이 왔을 때 지치지 않고 나아가려면, 지금 내게 주어진 70을 잘 관리해 두어야겠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적당히 치열하게 살아가는 태도. 어쩌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것보다 어려운 균형이다. 그래도 이뤄 내야 할, 이뤄내고픈 균형이다.
언제 뭐 인생이 쉬운 적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