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리 대단한 감각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패션 분야에서 일하며 옷은 나를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겉으로 보이는 스타일이 그 사람의 감각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고 생각했다. 코디를 기가 막히게 잘 한다거나, 흔하지 않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감탄하곤 했다. 패션은 내가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도구라고 여겼다. 계절마다 옷을 소비하는 건 당연한 습관이었다. 자기 관리의 영역을 넘어 ‘일의 감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유행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나도 그 반열에 올라 열심히 옷장을 채우는 일뿐이었다. 옷장의 크기는 그대로였지만 철마다 새로운 옷이 쌓였다. 그래도 늘 부족하고 아쉬웠다. 기존에 있던 옷과 어쩐지 안 어울리는 것 같고 어딘가 모르게 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만큼 새로운 옷을 사서 메꿔 넣었지만,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살 땐 분명히 100%의 만족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핸드폰 배터리가 닳는 것처럼 80%, 67%, 35%, 10%로 점점 줄어갔다. 100%라는 값은 오직 새로움만이 채울 수 있는 설렘이었다.
소비를 반복하며 스타일링 노하우는 조금 늘었을지 모르지만, 그게 꼭 나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찾는 과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는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것에 더 주목하고 반응했다. 왜 항상 비싼 게 더 예쁜 걸까. 비싸서 예쁜 건지 예뻐서 비싼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더 비싸면 소재나 패턴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일하며 좋은 것만 보다 보니 그런 게 더 내 눈에 잘 띄기도 했다. 하지만 더 좋은 소재의 옷을 사기 위해선 그보다 몇 배 이상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다. 주머니 사정은 늘 비슷한데 좋은 것만 보다 보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느꼈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와 유명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연구하며 SPA 브랜드의 옷을 샀다. 주변 동료들 중에는 자신의 월급만큼 비싼 가방과 옷을 주저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차마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다.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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