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고 싶지 않은 마음

by 흔적


'바이오'라는 이름의 우유맛이 나는 캐러멜이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그걸 참 좋아했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을 좋아했다. 엄마가 뭘 갖고 싶냐고 하면 늘 바이오라고 답했다. 그래서 엄마는 아니,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에 늘 바이오를 선물해 주셨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머리맡에 바이오가 있었다. 너무 좋아서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먹었던 어린 날의 장면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떤 날에는 인형의 배를 갈라보니 그 안에 바이오가 들어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크리스마스가 바이오로 겹쳐졌다. 매번 좋아하는 걸 선물로 받으면 좋을 법도 한데, 어린이였던 나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다. 맛도 그저 그런 것 같고 받아도 별로 기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나. 전설의 아이돌 그룹 H.O.T.가 데뷔했다. 온 세상이 그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물들었을 때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친구들과 함께 덕질을 했다. H.O.T.가 '캔디'라는 노래로 활동할 때였는데, 무대 위에서 입었던 털이 북슬북슬한 옷과 가방, 모자가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그들의 패션은 점점 유행으로 퍼져나갔고 동네 상가에 있는 문구점까지 점령했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과 둥글둥글한 모양의 가방과 모자가 어찌나 갖고 싶던지. 문구점을 지나갈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어느 날, 엄마한테 털 가방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고 아마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모양인듯했다. 갖고 싶었던 가방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사실에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모른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고도 남을 나이었지만,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엄마의 부스럭거림을 애써 모른체하며 선물을 기다렸다. 잠이 오지 않는데도 눈을 질끈 감고 아침을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의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선물을 풀어볼 시간이었다. 비닐 포장지는 어딘가 모르게 조금 작아 보였지만, 설마 다른게 들어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은 털 가방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포장지를 뜯어 열어본 순간, 내 눈앞에 놓인 걸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털은 털인데 너무 짧았고 가방이긴 한데 지나치게 작았다. 내가 원한 건 크로스 가방이었는데, 받은 건 핸드백처럼 작고 빨간 털 가방이었다. 나는 실망했다. 엄마가 H.O.T.의 무대 의상을 모를 수도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H.O.T.가 유행시켰던 '그' 털 가방을 영원히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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