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의 굴레

by 흔적




태어나서 여섯 살 때까지 살았던 곳은 저층 아파트였다. 4라는 숫자는 재수가 없다고 해서 집이 4층이었는데도 다른 숫자를 썼던 기억이 난다. 현관문을 열면 왼쪽엔 거실이 오른쪽엔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정면에 좁고 어둡고 긴 복도가 있었다.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방이 하나씩 나타나는 구조였다. 하나, 둘, 셋. 그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한 살 어린 동네 아는 동생과 서로 쥐어뜯고 엄청 싸웠던 기억도 난다. 이마가 동글동글해서 예쁜 아이 었는데, 그땐 뭐가 그렇게 얄미웠는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고층 아파트였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근처 아파트에서 1년을 살았고, 그 다음은 새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 다음 아파트로 옮겨가고 그 다음 아파트로 옮겨갔다. 나의 10대 시절은 이사의 반복이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더 좋은 동네로 더 넓은 집으로 가는 이사라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파트 생활을 끝내게 되었던 날이 있었다.



겉으로는 무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때 난 가장 예민했었다. 나조차 나 자신의 예민함을 마주할 수 없는 내면의 그 무언가가 있었다. 언덕이 있는 길을 트럭 앞자리에서 바라보며, 애써 무덤덤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니 무덤덤했다. 그리고 얼떨떨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광경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정하고 붙임성이 좋았던 친구는 매일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집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공간이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핑계로 둘러대며 매번 피했지만, 그 친구는 참 끈질겼다. 싫은 내색을 그렇게 했는데도 물러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더 끈질겼다. 결국 우리 집에 온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그때부터였을까. 아파트라는 곳은 내 마음 안에서 어떠한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다. 언젠가 되돌아가지 않으면 내 안에 자리 잡은 결핍을 완벽히 채울 수 없을 것 만 같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작게 시작하자고 말했고, 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상가 건물 1층에서 전화로 소리를 질러가며 울부짖었다. 나도 나의 모습이 얼마나 못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 아리고 아픈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백 번 양보해도 이것 만큼은 도저히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나이만큼 오래된 아파트에 십몇 년 만에 다시 입성했다.



오래된 창문, 오래된 화장실, 오래된 복도. 모든 것이 오래되었지만, 아파트라는 그 자체로 모든 것은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보호받는' 느낌이 좋았다. 낡은 상가도 괜찮았다. 층간소음도 조금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어쩌면 더 불편한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나는 기꺼기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고 싶었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가 신도시를 지나칠 때면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가 담뱃각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집 공장이 늘어선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평생 모은 돈으로 혹은 모을 돈으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이다. 조금 더 프리미엄 한 아파트에 가려고 애를 쓰는데, 모두가 프리미엄을 달고 있어 그마저도 평준화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역시 그 열망에 매달린 끄나풀에 불과하다.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 그 덕에 예쁜 동네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졌는지, 창의성을 결여시키는 공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다음 집은 조금 더 반듯하고 깨끗한 아파트이길 바라게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우리집은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하길 원한다. 나의 마음은 모순 그 자체다. 이것은 어쩌면 살면서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될까.


아파트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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