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감정을 남긴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by 흔적



나의 가장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세네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있었고 무언가 계속 두렵고 공포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엄마 품에 아무리 파고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공포 때문에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 날의 상황이 어떠했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두려움의 감정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오래된 사진첩에서 그 날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대상은 다름 아닌 놀이공원의 팬더 인형탈이었다. 나는 울먹이는 얼굴로 엄마에게 안겨있고 엄마는 야속하게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인형탈 때문에 그토록 겁에 질렸다는 것이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는 허탈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의 어린 날에 대한 기억은 낯설고 겁나는 것 투성이었다.


한 번은 유치원 쉬는 시간에 옷에 오줌을 싸는 바람에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두컴컴한 복도에 서있다가 원장 선생님께 발각되어 옷을 갈아입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나는 너무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춤 상태였던 것 같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갔는지 아니면 수업에 들어갔는지 그 날의 정황은 머릿속에 흐릿하지만, 그 복도에서의 시간은 꽤 길게 느껴졌었고 난 그때의 내 감정을 기억하고 있다.


유치원 소풍날 나만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던 잊지 못할 사건도 떠오른다. 아침이었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갔는데, 친구들 모두가 하나같이 멋스러운 옷차림에 풍성한 도시락을 옆에 끼고 자리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놀란 엄마는 내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부랴부랴 뛰어서 마트에 간식을 사러 가셨는데, 엄마는 오지 않고 친구들은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나를 흘끔대던 그 시간의 그 초조하고 불안했던 감정은 잊을 수 없다. 결국 나는 까만 봉지에 과자와 주스를 들고 소풍에 갔고, 친구들의 도시락을 얻어먹어야만 했다.


그 날의 실수가 엄마한테 소풍 가는 날이라는 걸 말하지 않은 나의 탓이었는지 엄마에게 전달사항을 이야기해주지 않은 유치원 선생님의 탓이었는지 듣고도 깜빡한 엄마의 탓이었는지 셋 중 누구였는지 진실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리고 정작 엄마의 기억은 희미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던가. 라고 엄마는 내게 무심히 말했다. 나에게 이렇게 강렬하게 남아있는 초조함의 기억이 엄마에겐 별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하루에 불과했다니.


즐겁고 좋았던 날들도 많았을 텐데, 몇 안 되는 유치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하나같이 세상에 나아가는 걸 주저하는 어린 나의 모습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겁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고, 세상의 틀에 나를 맞추기를 어려워하면서 서툴고 어설프게 성장해왔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새 훌쩍 어른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세상의 때가 묻을 만큼 묻은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내겐 세상이 어렵다. 이제는 마냥 어린아이처럼 겁을 내고 두려워할 여유조차 존재하지 않으니 어쩌면 어린 날들보다 더 혹독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폴과 라일라의 기억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 폴(아틸라 마르셀)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역시 정확한 기억이 아니라 흐릿하게 남아있는 몇몇 장면의 인상들이 전부다. 그 장면들로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고 추억할 뿐이다. 그게 잘못된 기억일지라도 오래되고 빛바랜 기억은 그 자체로 남아 오랫동안 마음속 어두운 한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기억은 잊혀져도 감정은 남아서 어른이 된 폴을 오래도록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도록 가두게 된다. 그가 어디까지 사실을 기억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기억 속에 각각의 장면들이 어떤 색과 빛으로 남아 있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들을 남길 테니.


어린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폴을 보고 있자니, 또 다른 영화가 생각났다. 바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다. 주인공 라일라는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와 관계를 맺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들은 모두 각각의 기억이 되고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라는 다섯 가지 감정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그중 특별히 인상적인 경험들은 핵심 기억이 되어 아이의 인격과 내면을 형성하게 된다. 라일라는 내면의 세계에 가족섬, 엉뚱섬, 정직섬 등 다양하고 풍성한 섬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각각의 섬들은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따라 더 밝게 빛나기도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한 사람이 태어나 부모와 어떤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맺으며 어떤 환경 속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사회에 나가 의사소통하며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아주 어린 날 스쳐 지나갔던 하나의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도 그 날에 겪었던 감정의 기억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훗날 어른이 될 자신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는 것 아닌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슬픔과 역경을 경험하느냐 마음의 상처로 남아 오래도록 트라우마가 되느냐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라가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들을 안고 성장하다 어느 날 이사를 가게 되면서 위기를 겪게 되는 이야기라면,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의 폴은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결핍, 아버지에 대한 잘못된 원망의 기억은 어린 폴을 영원히 제자리에 머무르게 만든다. 서른이 넘도록 모빌에 반쪽짜리 어머니의 사진을 잔뜩 걸어놓고 그리워하며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으로 자라난 폴은 그 누구에게도 자기의 감정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폴의 가족섬은 너무 일찍 불빛을 잃어버렸다.










대화가 필요할 뿐



나는 그가 입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 자의든 타의든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 날엔 충격으로 입을 닫았을지 모르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일방적인 교육방식의 이모들 사이에서 살며 입을 열 틈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대화 자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은 있지만, 의미 없는 말들은 허공에 튕겨져 나갈 뿐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폴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마담 프루스트와 그녀의 비밀정원, 마들렌과 홍차는 더욱 특별한 환상처럼 다가온다. 그녀는 신비로운 정원에서 마술을 부리듯 폴을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안내하지만, 그녀가 건넨 건 꿈같은 경험이 아니라 마음의 대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왜곡된 기억에서 벗어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잔혹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의 어린 날은 공포투성이었지만 엄마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크게 간섭하지 않으며 넘어질 때나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를 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었다. 생각해보면 그건 엄청난 감정의 충만함이다. 겁을 내었던 것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넘어져서 다쳤던 상처도 어느새 새살이 돋아 금방 아물게 하는 힘을 지녔다. 그래서 타고난 겁쟁이에 예민함 투성이인 나도 친구를 만들고 내 나름의 대화법을 가진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조금씩은 슬프고 아팠던 감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조금씩은 어딘가에 결핍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타인에게 다가가는데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으며, 어떻게 해도 완벽하게 성숙한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는 누구나 폴처럼 왜곡된 감정의 기억을 지니고 어딘가에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남겨놓은 채 어른이 된다. 다만 서로를 보듬어줄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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