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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Oct 09. 2018

기록의 양면성



'기록'이라는 단어의 이미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같아도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르게 쓰인다. 말의 의도나 분위기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원래 내가 '기록'이라는 단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느리고 사적이고 진지한 느낌이었다. 기록의 도구는 연필과 펜에서부터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기록의 공간 역시 개인의 작업실과 서점, 도서관에서 부터 스튜디오나 카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기록'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장면은 '조용한 카페에 앉아 노트와 펜으로 끄적이는' 정도가 된다.


스마트폰 속에 수많은 사진과 영상이 존재하고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심심치 않게 기록을 하지만, 작은 수첩에 필기할 때 스스로 기록했다고 느끼게 된다. 아마도 어린 날에 형성된 기록에 대한 이미지는 어른이 되어 겪은 기록과 관련된 수많은 경험보다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필로 꾹꾹 눌러 일기를 쓰던 시절에 이미 기록에 대한 강한 인상이 만들어진 셈이다.


나와 다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기록에 대해 또 다른 이미지를 갖고 살게 될 것이다. 요즘 아기들은 이것저것 눌러보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누른다는 행동은 소리가 나거나 장면이 전환되는 등의 현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인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크고 묵직한 수동 카메라의 필름과 스마트폰 셀카만큼이나 큰 간극이 아닐까.










기록의 흔적은 찾아가는 영화 '서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는 아빠의 과정을 담은 영화 '서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 기록물을 들여다보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극장 안의 네모난 화면은 그대로 노트북 화면이 되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되고, 뉴스의 한 장면이 된다. 관객들은 딸의 흔적이 담긴 노트북 안의 기록물들을 들여다보며 영화의 흐름을 같이 한다. 1시간 40여 분간 노트북 화면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게 몰입하게 되는 장치이자 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장된 사진, 주고받은 메시지, sns에 올린 이야기들이 모두 사건의 단서가 되고, 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유추하는 증거가 된다. 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아빠는 남겨진 기록 속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검색하고 찾고 또 찾는다. 어딘가에는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허상이 남겨져 있고, 어딘가에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담겨있기도 하다. 영화 안에서 보여지는 기록물들 역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되면서 동시에 왜곡하고 꾸며낼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


그 안에서 너무나도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들이 주변 인물들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남의 불행을 컨텐츠 소재로 활용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떠도는 광고 이미지를 가져다가 가면을 쓰기도 한다. 극단의 상황에 놓인 영화에서 격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크고 작게 sns 시대에 물든 우리의 자화상이 놓여져있는 듯하다. 글을 쓰다가 가끔 어디까지가 나의 진실이고, 이러한 모습이 나의 전체 모습 중 얼마간의 비중을 차지할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아닌 것도 아닌 채로 꾸며지는 세상. 이제는 스스로 sns 자아와 나의 자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기록과 검색 그리고 연결



이제 '검색'이라는 단어는 '기록'과는 다르게 검색창과 키워드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24시간 연결되고 접속된 세상 속에서 서로를 인증하고 인증받으며 기록물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나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엔 하루에도 매우 방대한 양의 기록물들이 쌓여간다. 일하면서 수집하고 생산한 자료들, 앞으로의 계획을 담은 스케줄러, 카톡 메시지, 사진과 동영상, SNS 계정 글과 이미지들 속에 소중한 추억과 불필요한 정보가 함께 실시간으로 촘촘히 쌓여간다. 모든 것이 나의 기록물이며, 누군가 나의 기록물만 들여다보고 나라는 사람을 유추하게 된다면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상상해본다. 


함께 공유하는 기록은 양면적이다. 소수에게만 흐르던 정보를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는 기록의 변화는 평등하지만, 노출된 나의 기록이 잘못 이용되면 위험해지기도 한다. 쉽게 기록할 수 있게 된 환경은 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만큼 가볍게 소비되고 오해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하루를 보내는 시간의 속도보다 쏟아지는 기록물들의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우리는 집중을 잃고, 빠져나올 수 없는 피로감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덫에 자신이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스스로 만든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가 부여되는 만큼 감시당하고, 책임도 개인의 몫으로 지워진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기록 풍요의 시대를 걸어나가고 있다.


'기록'이라는 단어는 중립적이다. 기록 그 자체를 좋고 나쁨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 안에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어떤 맥락에 주요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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