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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Apr 26. 2019

같은 온도, 다른 지점



비슷한 사람



성격이 비슷한 사람, 자라온 환경이 비슷한 사람, 취향이 비슷한 사람, 비슷한 삶의 가치를 지닌 사람. 내가 아닌 타인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나와 닮은 구석을 찾게 되는 건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땐 크게 성격을 외향과 내향으로 나누어 나와 같은 소속인 친구들을 사귀었다. 목소리가 크고 붙임성이 좋고 누구와든 쉽게 친해지는 친구들보다는 조용하고 어딘가에 주저함이 있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타입과 친구가 되었다.


아 이 친구는 나와 정말 비슷하구나.


성장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회의 테두리는 마치 그 비슷함의 범위를 더 좁게 나누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여주는 것 같았다. 같은 지역, 같은 학교와 전공, 같은 업계. 그렇게 점점 더 좁아지는 듯했다. 그 안에서 비슷한 성격이나 비슷한 취미를 가지면 곧 잘 친구가 되곤 했다. 아마 친구를 통해 유대감이나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친구와 일상의 패턴을 함께 공유하고 그것이 비슷하길 바랬던 적도 있는 것 같다.











취향과 성향 차이



물론, 그렇게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비슷한 내향성을 보유했다고 해서 취향마저 비슷한 경우는 드물었다. 별도의 취미나 관심사들은 동아리나 동호회에서 함께 공유할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곳도 사람들의 캐릭터는 제각각이었다. 오히려 더 나와는 다름을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취미가 같다고 해서 취향이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취향을 공유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래 취향이라는 혼자만 간직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데칼코마니처럼 꼭 맞는 취향의 누군가를 만나길 바랬던 건 아니다. 단지 고여있지 않고 새로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취향을 깊고 다양하게 할 기회를 기다렸던 거다. 


일하는 분야와 성격, 취향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다 각자의 삶을 살고 서로 다른 선택들을 이어간다. 어릴 땐 다 친구들이 같은 동네에 살았고 같은 걸 공부했고 비슷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같은 출발점에서 비슷하게 가고 있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지는 더 다양해졌고 누군가는 예상도 못한 선택을 하게 되면서 삶의 모양은 점점 더 달라져갔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더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유대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때쯤 왜 나는 그동안 나의 선택이나 취향들이 남의 것들로 어설프게 조합되어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분명 나의 방향이나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해서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주장들은 내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내린 섣부른 판단들이었다. 나는 나의 취향도 성향도 모른 채 허상 같은 동질감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건 아닌지.










같은 온도, 다른 지점



나와 똑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일하는 분야가 비슷해도 사람의 취향은 제각각이고, 취향이나 취미자 맞아도 성격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모든 속성이 같다고 해서 비슷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 너무 힘을 주고 생각하다 보니, 더 다양한 사람들과 유연한 관계를 맺지 못했던 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요즘의 나는 삶에 대한 생각이나 방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좋다고 느낀다. 서로 다른 경험과 기질을 지녔고 역시나 사는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공통된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자기 내면을 자꾸만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그들에게 유대감이나 동질감보다 더 큰 울림의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나와 비슷한 온도를 느낀 적이 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삶의 모습을 지녔지만, 어딘가 모르게 온도가 비슷한 사람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도가 같아서 날씨는 비슷하지만, 사는 지역이 달라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알게 된다면 이런 감정일까. 마음의 계절이 비슷하다고 느껴졌을 때 속으로 울컥하고 말았다. 어디에선가 나처럼 느린 걸음을 힘들게 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이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응원을 마구마구 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에는 글이 있었다. 그 글들은 내게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나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나의 잡스러운 고민이 어딘가에도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기도 했는데, 때로는 그게 애잔하기도 했다가 웃프기도 했다. 글은 글쓴이의 내면을 드러낸다. 때로는 말보다 솔직하고 강력하며 결정적이다. 글이 좋은 미화의 포장 도구가 될 때도 있지만, 별다른 포장이 없을 때 오히려 진심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이곳에 나의 경험이나 기억들을 담아 글을 쓰면서 느끼게 된 건, 글은 도저히 나를 내어놓지 않고서는 써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거다. 










지켜봐 주는 것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고 자만인 것 같다. 보여지는 건 각자의 거대한 세계 속에 아주 작은 파편일 뿐이기도 하고, 나도 변하고 사람들도 계속해서 변해가기 때문에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관계의 거리나 모양 역시 멈춰있지 않고 달라져만 간다. 


닮은 사람을 찾아 헤매는 나의 대항해는 끝을 맺었지만, 어딘가에서 비슷한 계절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지켜보는 일은 더 느슨하고 긴 여행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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