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말로 설계되지 않게 된 주말에 대하여
사실,
이번 주에 올라야 할 글이 있다.
그런데 그 글을 올리기 싫어졌다.
나쁜 글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열심히 다듬은 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글이 이상하게,
그전에 올렸던 글과 비슷한,
무의미한 말처럼 공허하게 느껴졌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고,
에세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내게는 많은 글감이 있었다.
<나는 감정을 설계합니다>
이 시리즈는 감정 설계자인 나 자신의 고뇌와,
일상을 통해 '감정 설계'에 대해 소개하는 시리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편 소재와 글에 쓸 일화를 정해뒀다.
그리고 편수도 정해져 있었다.
1화에서 7화까지 본편을 모두 끝낸다.
그리고 8화부터 9화까지 여유가 되면 외전을 올리자.
그런데 참 이상했다.
막상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니,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단순히 진심만 전하고 싶던 내 글이,
한참 부족해 보이고,
문장은 센스 없고 밋밋해 보였다.
하필 내 일상에서 일이 몰아닥치고,
갑자기 일이 늘어난 시기가 된 건 구실에 불과하다.
처음 에세이를 썼을 때의 속도만 되었어도,
나는 진작 이 에세이를 마치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을 거다.
그런데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7화까지 오게 되면서 알게 된 거다.
내가 그토록 다양하다고 생각했던 내 이야기,
내 솔직한 진심과 나의 감정 설계,
그건 사실 별 게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가장 부정하고 싶던 진실이었다.
정확힌,
감정 설계란 것 자체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은,
결국 몇 줄밖에 되지 않는단 거다.
저번 주에는 이 진심이
저번 이야기와 다른 게 있는지,
무성의하게 똑같은 이야기로 들리진 않을지
고민하고 다듬다 올리지 못했다.
언어로 올리는 게 두려웠다.
감정 설계자.
내가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붙인,
이 칭호가 무겁고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이런 글을 올릴만한 사람일까?'
내 기획은 보잘것 없었고,
내 감정은 기대해주는 분들께,
실망만 안겨줄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글로 쓴 다정한 문장은
참 밋밋하고 똑같은 단어였다.
이건 실패였다.
에세이를 쓰지 않던 내가,
자만해서 나서버린 내 현실.
아마 에세이에 익숙한 작가님들이었다면
훨씬 능숙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이 감정을 설계하여 펼쳤으리라.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보잘것 없는 진심은,
몇 줄짜리 감정으로 납작하게 남고,
그나마도 예전에 했던 말만 반복하는,
고장난 라디오에 불과했다.
그게 슬펐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내가 쓰려던 글은,
과거 내가 설계에 실패했던 이야기,
사소한 실수에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던,
미숙한 시절을 얘기하고,
보완해나간 이야기였다.
그리고 난 그 이야기를 다 완성했다.
어젯밤에 예약도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현실을 마주하니,
그 글 자체가 기만 같았다.
이토록 능숙한 척하면서,
실제의 나는 실수에 허덕이고 있으니까.
그 글은 틀린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내 마음과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감정을 설계한다고 말해왔던 만큼,
지금 내 감정과 너무나 다른 글을
그냥 올리고 싶지 않은 고집이 솟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
다시 처음부터
써보기 시작했다.
이 글은 평소보다 어설프고,
정제되지도 못했고,
감정이 조심스럽지도 않다.
그치만 ‘감정 설계자’의 실패에 대한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감정을 설계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결국 지금도 여전히 내 감정을
설계하지 못하고 있단 사실을
사무치게 깨닫고 있다.
하지만
이 낭패와 어긋남마저
감정 설계의 일부로 남기고 싶었다.
이 글을 새로 쓰기 시작한 건,
제 진심이
너무 작고 뻔한 몇 줄로만 남아
다른 말들은
그걸 덮기 위한 설명처럼 느껴지기 싫어서.
무의미한 메아리처럼
들리지 않고 싶은 고민 때문인 거 같다.
그럼에도
제 부족한 글을
이렇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어딘가에,
제가 조심스럽게 꺼낸 이 진심이
살며시 닿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건 아직 설계하지 못한 채
그냥 두기로 한 제 감정이에요.
서툴지만 지금 저의 진심이고,
이 감정도 언젠가
다시 설계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전에는 글마다 이야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골랐어요.
몇몇 분들은 이야기와 그림의 일화가 비슷한 것에,
재미를 느끼길 바라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늘만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화를 붙였어요.
고흐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조용히 그린 아몬드 나무예요.
처음엔 그저 예뻐서 좋아했어요.
파란 하늘 위 흰 아몬드 나무가 고요하고 다정해 보여서요.
그런데 그 마음을 알고 나니
이건 꽃이 아니라,
진심이 피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소박하고 진심 어린 사랑이
제게는 너무 생생해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어요.
오늘 제 글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 사랑이 조용히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