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썼지만, 읽히지 않았다

닿지 않은 감정 앞에서, 조용히 설계하는 일에 대하여

by 주한하루

그날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해서 선물을 준비했다.

회사에서 일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장 잘 어울릴 만한 걸 고르고 또 골랐다.


넥타이였다.


어울리는 색깔,

회사에서도 무난하고 센스 있어 보일 만한 스타일.

은근히 “우리 애가 사줬다”고 자랑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기대까지 담았다.


백화점에서 고를 때,

점원에게 몇 번이나 묻고 포장도 부탁했다.

“아버님은 이런 자식 두셔서 기쁘시겠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 들떴다.


포장된 상자와 손글씨 편지를 들고

작게 숨을 고르며,

안방문을 연 내가 말했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그 순간,

아버지는 안방 침대에 누운 채 티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 고맙다.”


그게 끝이었다.




그 무심함 앞에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색하게 쭈뼛쭈뼛 자리를 떴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아버지는 내가 나가는 걸 보지도 않았다.


그 선물을 어디에 뒀는지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 감정을

‘어설픈 기대’와 ‘조금의 섭섭함’이라 정의했다.

어머니는 그런 내게 덧붙이듯 말했다.


“네 아빠가 표현이 무뚝뚝해서 그렇지,

엄청 좋아하셨어.”


그 말에 기대어

그날도 감정을 덮었다.


며칠 뒤,

아버지의 퇴근길.

그 넥타이가 그의 목에 걸려 있었다.


“넥타이 잘 어울리세요.”


“그냥 뭐, 똑같지.”


“다른 분들은 뭐라고 안 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이 왜?”


그 말에,

나는 아버지가

그게 내 선물이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무슨 넥타인지 편지에 적어뒀는데…’


아버지가 평소 안 하는 색깔이라 신경 썼다고.

좀 젊은 느낌이 날 수 있지만, 그래도 세련되게 어울리실 것 같다고.




그 편지는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빠 서재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익숙한 봉투가 섞여 있었다.

스티커가 뜯긴 흔적도 없는,

내가 쓴 편지였다.


다른 서류와 봉투들 사이에

무심하게 뒤엉켜 있었다.


아무래도 어머니께서

포장을 대신 열고

편지를 서랍에 넣어두셨던 모양이다.


그 편지 속,

예쁘게 눌러 쓴 내 글씨가 보였다.


“아버지가 표현하지 않으셔도,

절 많이 사랑하는 거 알고 있어요.

아버지, 사랑해요.”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서운했다.

조금은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다.


고작 선물 하나.

그것도, 결국 아버지 돈으로 산 거였다.

그걸로 억하심정이라니.


그 정도로 섭섭해하는 내가,

괜히 자격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처받은 건 나였지만,

아버지에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오랜 기억이 되어,

아버지와 마주칠 때마다 떠올랐다.


사랑받는다고 말은 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고.

사랑받고 싶은데,

더 실망하긴 무서웠다.

아버지께 슬쩍 운을 떼봐도,

아버지는 '선물'을 기억도 못했다.


어떻게 아버지의 사랑을 의심하고,

그렇게까지 실망할 수 있을까.


이런 일로 서운해지는 내가,

좋은 자식일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기억들 속에서

어쩌면 더 깊은 마음으로

날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다만,

아버지는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나는 말해도 도달하지 않는 자리에

너무 오래 기대를 걸었을 뿐이다.




그래서 봉투에서 편지만 꺼냈다.

장난처럼 포스트잇 하나를 넣었다.


‘편지인 줄 알았죠?

그 편지는 시간이 지나 사라졌답니다.’


그치만 아버지는 몇 년이 지나도 편지를 발견하지 못해서 내가 그냥 아무것도 없던 척 몰래 들고와 오랜만에 꺼내봤다.


그리고,

마음을 조용히 정리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한다.

아버지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덜 상처받기 위해,

그 사람에게 감정을 건네는 방식을

조금 다르게 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다정함을 실감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실감하지 못해도,

이번엔 내가 괜찮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다정함마저 조심히 설계하기로 했다.


감히.





KakaoTalk_20250607_205227887.jpg 너무 사랑해도 사랑을 거둘 거리가 필요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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