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4년 차다.
매년 회사에서는 건강검진을 지원해 준다.
기본 항목 외에도
몇 가지 선택 검사를 끼워 넣을 수 있는데,
14번이나 검진을 받다 보니 정말 웬만한 건 다 해봤다.
이제 뭘 더 할 게 있나 싶을 즈음,
눈에 띄는 항목이 하나 있었다.
‘난소 나이’ 검사.
질 초음파는 정말 싫었다.
성경험과는 아무 상관없이,
그건 항상 고통스럽고 불쾌했다.
그런데 다행히 이 검사는 피검사로 진행된다고 했다.
좋아, 그럼 한 번 해보지.
모든 검사를 맞춰서 10점을 채워야 했고,
나는 딱 1.5점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걸로 넣었다.
난소 나이 검사.
그 결과는…
“48세.”
띠동갑 연상으로 나온 내 난소 나이.
이게 뭔 소리야?
다시 봤다. AMH 0.19.
너무 낮았다.
유튜브를 뒤졌고, 구글을 뒤졌다.
“조기 폐경이 2~3년 내에 올 수 있는 수치”
“이 정도면 자연 임신 거의 불가능”
…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 순간,
사망 선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
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38살, 만 나이 36살.
한국 나이로는 꽤 나이 많은 미혼 여성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드물다.
기회가 생겨도,
남자들은 나를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
“맞벌이는 가능한지”,
“가정에 잘 적응할 사람인지” 등
조건의 렌즈로 본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체념하고 있었다.
“안 해도 괜찮지.” “이제 혼자도 괜찮아.”
이런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버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야.
결혼이고 뭐고 간에,
내 안에 이런 사연이 있었는지 금시초문이었다.
입으로는 말했다.
“혼자 살아도 괜찮아.”
“결혼 안 해도 돼.”
그 말들을 믿고 싶었고,
사람을 만나보다 지치기도 했어서
어느 정도는 진짜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날,
검사 결과지를 들고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 마음 어딘가엔 아직도
함께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고,
내가 만든 가족을 꿈꾸던
내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체념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사실 원하고 있었구나.
결혼도, 아이도, 나만의 가족도.
그리고
그게 정말 가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현실이
눈앞에 닿았을 때—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울었다.
그동안 아무리 아픈 이별을 해도
길을 걷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차였을 때도,
회사에서 혼이 났을 때도,
눈물이 스콜처럼 ‘투두툭’ 하고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근데 결과지를 받고 3일 동안 그랬다.
회의 도중,
지하철 안에서,
편의점에서 계산을 기다리다가도
눈물이 ‘예고 없이’ 밀려들었다.
뭣보다도 내 몸이 “아프다”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도,
나는 그보다
‘이젠 어느 남자도 날 여자로 보지 않겠지.’
‘이제 영영 결혼 시장에서 탈락이겠지.’
‘엄마가 되기는 힘들겠네…‘
세상의 편견을 내가 먼저 내게 씌우고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또 눈물이 났다.
몸이 힘든 것도 괴롭지만,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마음이 더 아팠다.
그렇게
눈물로 지낸 3일째가 되던 날,
문득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금 당장 난자 동결하러 병원을 예약해야겠다.’
무슨 병원을 갈지, 어떤 절차가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이건 누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것.
시간이 없다. 슬퍼할 겨를도 없다.
이보시오 의사 양반 내가 난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