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난임 클리닉에 간 미혼

by 수수

건강검진에 나온 AMH 0.19 FSH 18.8.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지표들이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냥 넘기면 안 된다.'


그래서 병원을 알아봤다.

검색하고, 리뷰 읽고, 전화도 해보고…

그렇게 난임 클리닉 몇 곳을 추려냈지만
하지만 그 사실은 혼자만 알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부모님께 조심스레

난소 나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걸로 뭘 걱정해.

피 검사 수치야 다 추측이야.
다이어트 좀 하거나, 갑상선 수치 좋아져도 달라져."


의사 말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엄마는 단호했다.
"암도 아니고, 병도 아니고.
아이 안 낳는다고 뭐 큰일 나냐.

애는 짐이야, 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서른 후반 딸이 갑자기 생식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
보수적인 부모님 입장에선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겐 이 일이 전혀 다른 결이었다.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아예 가질 수 없다’는 단정은 너무 달랐다.
그리고 이 감정은,
아마도 내 존재 가치 깊은 곳과 엮여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설득도 어려울 테니까.

"병원이 돈 벌려고 그러는 거다"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예전에도 병원 주사 한 번 맞고 나면 꼭 그랬으니까.


사실 마음속 1순위는 차병원이었다.

내가 태어난 병원이기도 하니까,
왠지 내 난소도 그곳에 맡겨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납득이 들었다.


하지만 전화해보니 가장 빠른 예약이 8월 초였다.

시간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급했다.


결국 다른 병원을 다시 찾았다.
리뷰를 보고, 예약 가능한 곳으로 갔다.

그 병원은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큰 규모였고,
산부인과, 내과, 소아과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난자 동결 시술을 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겠지.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접수했다.


제출한 건감건진 결과지를 본 여의사는

다정한 말투였지만 설명은 냉정하고 현실적이었다.


“AMH 0.19, FSH 18.8이면 난임이에요.
시험관 시술을 해도 살아남는 난자가 없을 수 있고,
보통 한 번 채취하면 10~20개 나오는데
이 정도면 한 두개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시험관 시도조차 하려면 최소 10~15개는 필요합니다.”


그 말은 곧,
다른 사람은 한달에 한 번 시도할 수 있는 걸
나는 1년을 모아야 한 번 겨우 해볼 수 있다는 뜻 이었다.


시험관 시술 한 사이클에 300~500만 원.
나는 속으로 3천만 원 정도 예산을 생각했지만
그보다 훨씬 들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왔다.


그리고 시간과 돈보다도 더 무서운 건,
몸이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질 수 있고, 우울감이 올 수 있어요. 사람마다 부작용이 다 달라요.”
의사의 말은 담담했다.


1년 이상 견뎌야 할 수도 있다는 말.

나는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괜찮지 않더라도

이게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말했다.
“난자 동결 시술을 하겠습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리 2~3일 차에 다시 오세요.”


그 즈음, 우리집에서는 경사가 있었다.

내 남동생네 첫째 아이,

그러니까 내 조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됐던 시점이다.


부모님은 매일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미 동생이 여러 장을 보내도
“더 없냐, 더 보여줘” 하며 눈을 반짝인다.
“천사 같다”, “너무 예쁘다” 하며 행복해한다.


같이 앉아 사진을 들여다보다
나는 조카의 작은 손가락을 보며
눈물이 먼저 고였다.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범하게 결혼하고,

언젠가 아기를 품게 될 거라 막연히 믿고 있었다.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던 미래가 없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선택했다.

이건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능성과 미래를
내가 선택하고 싶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무섭고 막막하지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
버겁더라도 1년을 동결해보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난소 나이, 나는 몰랐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