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일

첫 검진일

by 수수

생리 2일 차,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갔다.
회사 일도 바쁜 날이었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었다.
일은 이따 밤에 다시 하면 된다. 야근도 익숙하니까.


처음으로 맞이한 시술의 시작,
그러나 그 첫날은 꽤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난자가 잘 안 보이네요.”
“갑상선 수치가 조금 높게 나왔는데 추적검사는 하셨어요?”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하자,

내분비 검사도 추가하겠다고 했다.
자궁경부암 검사도 하겠단다.

병원의 결정은 빨랐다.

이미 케이스가 많아서 그렇겠지.


여의사 선생님이 있는 초음파실에 들어갔다.
병원의 건조하고도 알콜 냄새가 난다.
선생님은 애교 섞인 말투로 “안녕하세요오” 인사했지만,
그 뒤로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내 수치에 따른 확률 몇 퍼센트만 말해주었고,
시술의 흐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내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시술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그제야 돌아온 말은 이랬다.
“저번에 설명 못 들으셨어요? 그게 다예요.”

그 ‘다’에 포함된 건,
AMH 수치에 따른 난자 채취 개수와
그 개수에 따른 임신 성공률뿐이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무슨 주사를 맞는지, 단위는 무엇인지,
부작용은 어떤 게 있는지였다.

“그건 간호사님이 설명해주실 거예요.”

설명 없는 병원.
공장형 병원인가? 그런 생각도 스쳤지만,
멀리 가지 말자.
현실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첫날은 피검사부터 시작했다.
나는 혈관이 약해서 채혈이 늘 고역이다.
오, 한방에 핏줄을 찾아주셨다.


질초음파는 아프고 낯설었다.
형벌의자처럼 생긴 검사대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낑낑.

“별로 안 보이네요.”
의사 선생님은 오늘도 말이 별로 없었다.


아마, 난자가 안 보인다는 뜻이겠지.

앞으로 내가 써야 할 수천만 원이
내게 과연 가치 있는 투자인가,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병원의 네이버 평점은 높았다.

의사도, 간호사도 친절하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빨리 처리해야 하는 업무처럼

다뤄진다고 생각이 들었다.


첫날은 피를 채혈하고, 질 초음파를 하고,

과배란 유도 주사와 알약을 받았다.

주사는 두 개였다.
하나는 호르몬 주사로,

삭센다처럼 바늘만 들어가는 타입 300ml와
다른 하나는 가루약과 용액을 섞는 주사 150ml를 처방받았다.
가루약을 섞는 타입은 좀 더 따끔하고,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원래 아침에 맞아야 하지만,
나는 미혼이고 직장인이라
저녁에 맞아도 괜찮다고 했다.

사실 나는 삭센다도 두통,

설사 부작용 때문에 포기한 사람이다.
그래서 좀 걱정됐다.

추가로 알약도 받았다.
배란 유도제였다.
졸릴 수 있어서 밤에 일정한 시간에 먹으라고 했다.


병원 오기 전엔,
이게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계속 생각했었는데

막상 주사기들을 손에 쥐자
정신이 들었다.
무서워서 울기만 하던 아이가
스스로 보호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사기를 가방에 넣고
다시 회사로 향하는 길,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졌다.

배란 후 채취를 해도
나는 한 번에 여러 개는 어려울 거다.
운이 좋으면 1~2개,

그래서 나는 다섯 번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한 사이클에 500만 원이라 들었는데,
실제론 한 번에 2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그럼 총 1천만 원.
생각보다 감당 가능하다.
몸만 따라준다면.

상반기 PI 인센티브가 도와줄 것 같다.


앞으로 병원은 자주 가야 한다.
문제는 회사다.
미혼 여성의 난자동결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혼이면 ‘난임 클리닉’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더 눈치가 보인다.

이해받기 힘든 선택.

하지만 나는 내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그 눈치를 감수하기로 했다.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왜 시험관을 하다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지.

단순한 체력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동시에 소진되는 과정인거구나.


하지만 나는 남편도 없고

내 한 몸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병원 문을 나서며, 다시 회사로 간다.

열심히 일하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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