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난자 보존 과정을 하면서, 나는 생리적인 고통만 겪은 게 아니라, 이전에는 진지하게 떠올리지 않았던 한 가지 생각을 마주하게 됐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
그동안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다. 언제든 결혼은 하고 싶었다. 미혼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임시 상태’였고, 언젠가는 ‘정상적인 흐름’을 따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출산에 대한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고, 내 몸이 더 이상 그 기능을 기대할 수 없는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과연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결혼이란, 적어도 나에게는 아이를 갖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굳이 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계속해서 따라왔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내 성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나를 이루는 성향들 말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전 길거리 사주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관성이 없다고 했다. 그건 그때뿐만 아니라, 이상하게도 다른 사주풀이를 볼 때도 늘 나왔던 말이다.
100% 믿는 건 아니지만, 그냥 재미 삼아 넘길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관성이 없다는 건 통제받거나 구조화된 틀 속에 있는 걸 힘들어한다는 거라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정확한 말이었다.
나는 늘 틀을 벗어나려고 했다. 누군가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만든 작은 경계 안에서 살고 싶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나 같은 사람에겐 너무 많은 울타리를 동시다발적으로 요구하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 이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리고 나보다 다섯에서 열 살 많은 사람과 가정을 꾸민다면—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먼저, 육아의 대부분은 나 혼자 도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 나이가 내일모레 마흔인데, 만약 배우자가 열 살 연상이라면 이미 오십이다. 체력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정점을 지나 안정이나 휴식을 원하는 시점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돌보는 주체는 거의 전적으로 나일 것이다.
동시에, 내 부모님도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연상 배우자의 부모는 훨씬 고령일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그의 부모님을 돌보는 역할도 나에게 넘어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 세대는 며느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경직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체적·정서적·사회적 부담이 겹쳐질 것이다.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 안에서 나는 나로 남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 하필 연상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주 간단하다. 내일모레 마흔인 여자를 결혼 상대로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대체로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웃긴 얘기지만, 그렇다. 같은 또래나 어린 사람들은 대체로 더 어린 여성을 선호하고, 결국 현실적으로 나에게 접근하는 결혼 가능성 있는 남성은 대부분 연상이다. 그래서 연상과의 결혼을 가정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전제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전제가 쌓이면, 그 위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는 개인 시간의 가치가 크다. 이건 단순히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나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아무와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 보내야 겨우 다시 세상과 관계 맺을 수 있다. 누군가의 기분이나 감정에 상시적으로 반응하는 구조 안에 들어가면, 점점 나라는 중심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결혼처럼 항상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엮여 있는 관계 속에선 쉽게 소진된다.
나는 강압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겉으로는 부드럽게 조율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누군가가 나에게 뭔가를 강제로 요구하거나, 구조적으로 정해진 역할을 암묵적으로 수행해야 할 때 극도의 저항감을 느낀다. 결혼은 그런 무언의 압박으로 가득한 제도다. 특히 ‘당연히 네가 해야지’라는 말이 오가지 않아도, 기대감으로 느껴지는 구조 안에 오래 머물면 그 자체가 질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는 자기 성장을 원한다. 단지 커리어의 확장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깊이 있는 나, 더 넓은 관점을 가진 내가 되고 싶다. 나는 공부를 좋아하고, 도전을 즐기며, 한 번 배운 것을 실전에서 적용해보는 과정을 좋아한다.
그런데 결혼생활이란 건 기본적으로 반복성과 안정성을 요구한다. 그 구조 안에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이기적인 일탈’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면, 내 변화에 피곤함을 느끼거나 불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나는 나의 속도와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숨기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겹쳐졌을 때,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나’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 욕망, 내 기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의 결은 과연 그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니다. 그래서 결혼을 상상하지 않는 삶, 그 자체가 내게 처음으로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당연히 더 일찍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나는 서른여덟이 될 때까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있었을까. 그 전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20대는 생존이었고, 30대 초중반은 커리어를 쌓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내 감정을 다잡고 다시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 ‘결혼은 언젠가 하겠지’, ‘아이도 아마 낳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전제 아래에서 그냥 버텨왔던 것 같다.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의 많은 서른여덟, 그러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결혼이 점점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시점, 아이를 갖는 가능성도 서서히 사라지는 시점, 그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묻게 된다. 내가 그 전제를 정말 원했던 걸까? 그걸 못 갖는다면 내 인생은 무너지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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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 아닌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단지 결혼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구조와 방향을 내가 직접 설정하겠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40대와 50대를 위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재구성해보고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다. 피상적인 인맥이 아니라, 서로의 내면을 믿고 위로받을 수 있는 관계를 한두 개만이라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이는 동호회, 스터디, 일상의 대화 가능성을 포함한다.
배움 역시 내 삶에서 중심축 역할을 한다. 최근엔 영어 실력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진지하게 언어를 사용한다는 감각을 되살리는 중이다.
동시에 흥미로운 취미들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량 항공기 조종 수업을 등록했다. 단기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 낯선 기술을 배운다는 그 자체가 삶의 확장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장롱면허를 다시 꺼내 도로연수를 받는 계획도 세워뒀다. 이런 사소하지만 실질적인 기술의 회복이 삶에 활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50대 이후를 위한 설계도 중요하다. 나는 지금 마케터로서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이 일을 평생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쪽, 혹은 교육과 상담, 글쓰기 같은 직업군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야간 대학이나 평생교육원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고,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할 생각이다.
체력적인 기반도 중요하므로 운동 역시 일상에 넣어야 한다. 이건 단지 살을 빼기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확보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고 있다. 누구를 위해 쓰는 돈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자원으로서의 돈. 내가 나이 들면서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공간을 선택하고, 어떤 리듬을 유지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돈 말이다.
남들이 짜놓은 길을 따르지 않아도 내가 걸어가는 길이 되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