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페퍼
세상에는 처음 접했을 때 당황스럽지만,
매력을 알아버리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취향일 수도 있다.
나에겐 닥터 페퍼가 그랬다.
중학교 1학년때 다니던 수학학원에서 선생님이
문제를 하나 냈다.
“이거 맞추면 자판기에서 음료수 공짜로 뽑아준다”
그 말에 같은 반 애들이 30분 넘게 열심히 풀었지만,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찍었다.
“답은 그래프 상에 없는거 아니에요?
xy공간에는 답이 없어요.”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게 정답이었다.
선생님은 “너 이거 어떻게 맞췄니?” 하고 물었고,
나는 찍어서 맞춘게 부끄러워서 우물쭈물 했다.
그래도 약속대로 자판기 앞으로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갔다.
무얼 마실지도 우물쭈물하자,
선생님이 “이거 맛있어”라며 뚱캔 하나를 꺼내줬다.
닥터페퍼였다.
상으로 받은 음료라 기분 좋게 마셨지만, 맛은 묘했다.
콜라처럼 보였지만 캔은 더 검붉고 자주색이었다.
첫 모금에 느껴진 건 콜라도, 감기약도 아닌
어정쩡한 무언가. 체리 같기도 하고,
향은 살짝 이상했다. 아, 이거 말고 다른거 사달라 할걸.
첫인상은 당황 그 자체였다.
미국에서 살며 닥터페퍼를 다시 만났다.
그곳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자주 열고,
훈연 향이 밴 고기나 기름진 버거, 피자를 즐겨 먹는다.
이상하게도 그런 음식에
닥터페퍼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그때부터 버거집이나 피자집에서는
늘 닥터페퍼를 고른다.
콜라도 아니고, 체리코크도 아닌
닥터페퍼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나는 콜라와 비교하는 순간을 넘기고 나서
비로소 그 매력을 느꼈다.
체리코크와 닮았다는 말도 있지만,
닥터페퍼는 체리향이 더 강하고 맛의 결도 다르다.
처음엔 ‘페퍼’라는 이름 때문에
후추맛이 날까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후추보다는 향신료의 알싸함에 가깝다.
제로 버전도 드물게 원조와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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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닥터페퍼를 마이너한 취향으로 분류한다.
흔히 콜라나 사이다처럼 대중적인
탄산음료의 범주에는 넣지 않고,
한 번쯤 시도해 보는 이색 음료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닥터페퍼는 확고한 메이저 선택이다.
루트비어처럼 첫 모금부터 강하게
벽을 치는 맛도 아니고,
체리코크처럼 한정판 감성에 의존하는 맛도 아니다.
닥터페퍼는 ‘조금 다른 애’ 수준에서 시작해,
몇 번 마시다 보면 호감도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독특하지만 너무 멀리 가진 않은,
그래서 더 자주 손이 가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