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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서점을 좋아한다

by 수수

나는 독립서점을 좋아한다.

독립서점은 대형 서점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책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조명은 부드럽고, 진열대에는 베스트셀러 순위표 대신

주인의 손글씨 메모가 붙어 있다.

“이 책은 꼭 혼자 읽어야 해요.”,

“밤에 읽으면 더 좋습니다.” 같은 문장이

작은 안내판처럼 책 옆에 놓여 있다.


이곳의 책들은 큐레이션이 뚜렷하다.

소규모 출판사의 실험적인 작품,

오래전에 절판된 시집, 그리고 메이저 서점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 산문집들이 모여 있다.

서점 주인의 취향과 철학이 서가의 배열, 책갈피 하나,

포장 방식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책을 고른다는 건

단순히 소비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의 취향을 나누는 일에 가깝다.


서울 곳곳에 숨은 이런 독립서점들을 찾아다니는 일은

마치 도시 속 보물찾기 같다.

익숙한 동네 골목에 뜻밖의 책방이 숨어 있기도 하고,

카페와 서점이 절묘하게 섞인 공간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곧 그 서점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고,

그 대화 속에서 책을 넘어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게 고른 책은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다.

어느 비 오는 오후, 홍대의 한 무인 독립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단편집은 내용뿐 아니라

그날의 날씨, 공간의 공기,

그때 나의 기분까지 함께 기록된다.

책장은 점점 책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겹쳐 쌓이는 공간이 된다.


성신여대 밑줄

이 취향은 책 카페로도 이어진다.

합정의 ‘핌피’처럼 조용히 앉아

글을 읽거나 쓰기에 좋은 공간,

성신여대의 ‘밑줄’처럼

밀크티와 책의 향이 한데 섞이는 곳,

연남의 ‘브라운하우스’처럼

생활과 독서가 자연스럽게 맞닿는 공간이 그렇다.

이런 책 카페에서는 읽는 행위가

유난히 오래 지속되고, 커피 한 잔이

책의 한 챕터와 함께 끝난다.

독립서점이 ‘발견의 즐거움’이라면,

책 카페는 ‘머무는 기쁨’에 가깝다.


구미의 한 독립서점

그래서인지 여행을 가도 나는 꼭 그 도시만의

독립서점을 챙겨서 찾아간다.

지도를 켜고 표시된 점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누빈다.

그곳에서 산 책은 기념품이자 여행의 일부가 되고,

다시 책장을 펼칠 때마다 그 도시의 공기와 냄새,

계절이 되살아난다.


나이가 더 들면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다.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정리하고, 서가를 채우고,

누군가에게 꼭 맞는 책을 권하는 ‘사서’ 같은 하루를

살아보고 싶다. 요즘은 독립서점의 형태도 다양해져서,

목포의 ‘포도 책방’처럼 공유 서점 방식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여러 사람이 각자 자신만의 책장을 빌려

작은 서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책을 고르고

서로의 취향을 나누는 구조다.

한 공간 안에서 여러 개의 독립서점이 공존하는 풍경은

책을 중심에 둔 삶이 꼭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언젠가 나만의 서가를 갖추고,

누군가에게 “이 책은 꼭 읽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도 하루하루

정서적인 충만함을 벌어들이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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