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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커피와 향

by 수수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그렇지만 원두 품종이니 강배전·약배전 같은

전문적인 말은 잘 모른다.

게이샤 같은 이름들도

어디선가 들어봤을 뿐이지 설명하라면 못한다.

그리고 이상하게 카페인에 약하다.

조금만 진하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오후 세 시 이후에 마시면 그날 밤은

거의 잠을 잘 수가 없다.

좋아하지만 마음껏 마실 수 없는 몸인 셈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연한 농도로 커피를 즐긴다.

아메리카노라면 보통 샷 두 개가 들어가지만,

나는 한 샷만 넣거나 심지어 반 샷만 넣을 때도 있다.

그러한 이유로 사 먹기보다는

종종 콜드브루 원액이나

블렌디 같은 포션 커피를 챙겨 다니며

원하는 농도로 희석해 마신다.

얼음을 왕창 넣어 보리차 정도의 색을 낼 때

마시면 딱 좋다.

연한 커피는

특히 고소한 원두를 연하게 탔을 때가 좋다.

산미가 강한 커피를 약하게 타면 밍밍해지지만,

구수한 원두는 은은한 곡물차 같은 느낌을 남긴다.

결국 커피도 볶은 콩으로 만든 차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연하게 마시면 물 마시는 게 낫지 않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하게 마시는 게 취향이다.

연한 아메리카노, 보리차카노로 마시는 건

알고 보니 유재석 님이나 장항준 감독님도

커피를 보리차처럼 연하게 마신다고 한다.

나만의 특이 취향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나의 취향이 누군가와 공유되는 순간에는

오히려 작은 소속감이 생기게 된다.

취향이 곧 연결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주말에는 밤에 잠을 설칠 걱정이 없을 때는

산미가 강한 드립백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기도 한다.

요즘 웬만한 카페에서는 다들 드립백을 만들어 파는데,

두어 개 사다 일할 때 내려 마시면 그 재미가 쏠쏠하다.

망원에 있는 레이먼드 커피 마켓이 최애 중 한 곳이다.

산미 있는 드립백 종류가 다양한 곳이다.


그리고 나는 향이 좋은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바샤 커피의 ‘1910’ 블렌드는

산딸기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데,

회사 칸틴에서 한 번 내리면 공간 전체가

달콤하게 환해진다.

그 향이 한 번 피어오르면 사람들이

“무슨 향이 이렇게 좋냐”라고 묻곤 하는데,

그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게 신기하고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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