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터레스트
처음 핀터레스트를 알게 된 건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무드보드를 만들 때 꼭 필요한 툴이었으니까.
단순히 이미지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한눈에 비교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툴과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보드’라는 기능이 결정적이었다.
관련된 이미지를 하나의 공간에 묶어두고 펼쳐보면,
컨셉이 시각적으로 정리되고
톤 앤 매너도 일관되게 잡힌다.
브랜드 컨셉 맵을 제작할 때도 굉장히 유용했다.
지금의 나한테 핀터레스트는
단순히 업무 툴을 넘어선다.
말하자면 취향의 수집 창고이자,
나만의 힐링 공간이다.
네일 디자인, 인테리어 스타일, 패션 아이디어,
소품 하나까지—정말 뭐든지 담을 수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영상과 이미지들이 열려 있으니,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아이디어도 있구나, 이런 세계도 있구나’라는
작은 환기가 핀터레스트의 매력이다.
핀터레스트가 ‘개미지옥’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가 찾는 것만 보다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추천 이미지에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는 집을 꾸밀 때,
누군가는 결혼식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 쓴다.
목적은 달라도 결국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같다.
한눈에 보기 좋은 정리, 무한히 확장되는 아이디어,
그리고 안전하게 취향을 탐험할 수 있는 공간.
요즘은 혼자 살 집을 꾸미는 중이다.
꾸민다기보다는, 이제 막 가구를 새로 사고
배치해야 하는 단계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인테리어 바보라 뭘 어떻게 맞춰야
예쁜지 감이 잘 안 온다.
그래서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를 계속 들여다보며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예를 들어 하얀색 침대 프레임을 놓는다고 했을 때,
장판 색깔 하나에 따라 전체 톤 앤 무드가
완전히 달라진다. 벽지 색깔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가구만 잘 고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색깔과 조합을
비교하고 또 비교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핀터레스트를 스크롤한다.
출퇴근 길이 왕복 세 시간 반.
편도로만 1시간 40분인데,
그 시간 동안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이거다.
핀터레스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구경하고,
내 방에 가져다 놓으면 어떨지 머릿속으로
계속 그려보는 것.
이렇게 보면 핀터레스트는 단순히
취향을 수집하는 곳이 아니라,
내 일상 속 작은 설계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