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 디지털 시대의 느린 우정

by 수수

디지털 시대에 펜팔이라니,

좀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펜팔 사이트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던 사람이다.


처음 펜팔을 시작하게 된 건,

미국에서 10년 동안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영어를 거의 쓸 일이 없다 보니,

감이 점점 무뎌지는 게 느껴졌다.

“영어 까먹기 전에 펜팔이라도 해봐”라며 추천해준 건

고등학교 때 친구 A였다.

예전에도 나한테 스윙댄스를 영업했던 바로 그 친구다.

늘 뭔가 새로운 세계로 나를 밀어넣는 사람인데,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펜팔 사이트ㅡConversationExchange에선

각자 자기소개 글을 올리고, 관심 있는 사람의

글을 읽고 먼저 연락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메일 몇 통을 주고받고,

때론 카카오톡으로 넘어가

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서서히 친해졌다.

급하게 친해지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어차피 시차로 인해 바로 바로 답장이 어렵다.)

처음엔 언어 교환이 목적이었지만,

진짜 친구가 생겼다.

말레이시아 친구, 필리핀 친구와는

실제로 만나 함께 여행도 다녔다.

그들이 사는 나라에 직접 가서,

관광지가 아닌 ‘진짜 로컬만 아는 맛집’을

함께 찾아다녔다. 한국에 놀러왔을 땐

내가 안내자가 되어 서울을 같이 걸었다.

여행은 사람을 통한 여행이 진짜다.

정말 기억에 남는다.


브라질에 있는 친구는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안부를 주고받는다.

벌써 7년이 넘은 인연이다.

교육학을 공부하고, 심리학 석사 과정 중인 그 애는

지금은 유치원 교사로 일한다.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지만 늘 성실했고,

한국 사람처럼 한국어를 잘 한다. 영어도 물론 잘 하고.

그 사이 그는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지만

여전히 꿋꿋하고 따뜻하다.

나는 그 강인함을 존경한다.


누군가는 펜팔로 연애를 하기도 한단다.

나에게도 그런 인연이 있을까 했는데

한국에서 한 번 만난 남자애는

내게 포켓몬고를 소개해준 게 전부다 ㅋㅋ

그래도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6년째,

아주 듬성듬성이나마 포켓몬고를 하고 있다. 허허.

누가 알았을까. 얼결에 주고받은 이메일 몇 통이

이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을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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