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면 향신료를 사 오는 사람
나는 외국에 가면 유명한 랜드마크보다 항상
로컬 마켓부터 찾는다.
어릴때도 동네에 요일장이 서는 날이면
꼭 구경을 갔는데, 그게 그대로 이어져서,
여행지에서도 유명한 랜드마크보다,
그 동네 사람들이 뭘 먹는지가 궁금하고,
실제 그 나라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외할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아니 무슨 80년대도 아니고, 시장만 다니려고 하냐.
좋은 데도 좀 보고 그래야지, 원…” 하며
안쓰럽게 여기시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로컬 마켓을 걷는 게 좋다.
나는 여행할 때마다 향신료를 기념품처럼 사 온다.
그렇게 사 온 나만의 기념품은
단지 ‘요리에 쓰기 위한 재료’가 아니라,
그 나라의 풍미와 공기를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 나라에서 내가 직접 고른 그 향신료로
요리를 만들어 낼 때
나는 다시 그 여행지에 있는 기분이 든다.
기본 허브류부터 다양한 스파이스를 가지고 있는데,
바질, 파슬리, 오레가노, 크러시드 레드페퍼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이고, 커민, 팔각, 타임, 마살라,
파프리카 분말, 강황가루, 넛맥, 샤프란 같은
조금 더 향이 강하고 개성 있는 아이들도 있다.
서양권에 가면 스테이크 시즈닝, 타코 시즈닝,
베이글 시즈닝은 거의 무조건 사 온다.
이게 진짜 사용성이 어마어마하다.
베이글 시즈닝은 오픈 샌드위치나 삶은 달걀에 그냥
솔솔 뿌려주기만 해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샐러드 위나 삶은 달걀 위에 얹어도 맛있다.
스테이크 시즈닝이나 타코 시즈닝은 말 그대로
‘믹스만 해도 맛이 완성’되는 마법의 가루다.
감자나 볶음밥에도 잘 어울린다.
서양의 후리카케라고 해야 할까.
조합 몇 가지면 진짜 간단하게 맛있는 음식이 된다.
향신료 하나만 바꿔도 요리의 분위기와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피터팬에서 팅커벨이 마법의 가루를 뿌리면
사람들이 날기 시작하는데
나에게는 그게 향신료 같다는?
내 부엌에서 향신료 하나를 뿌리는 순간,
그건 단순히 맛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그 나라의 공기를 살짝 들이마시고,
내가 익숙한 반경을 벗어나
잠깐 떠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향신료는 여행이다.
부엌 안에서 떠나는, 아주 짧지만 진짜인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