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작년 6월, 처음 난소 기능 저하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다. 몸에 대한 판정은 숫자처럼 건조하게 전달되지만, 그 안에는 미래가 들어 있다. 가능성, 선택, 절망, 상상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무렵 태어난 조카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그만 손톱과 접히는 통통한 허벅지, 말랑한 발바닥을 보고 있으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아이가 미워서가 아니라 너무 예뻐서였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그냥 조카로 보이고, 그 아이를 보는 일이 기쁨이 된다. 감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모양이 바뀌었다.
서른두 살 이후로는 늘 조바심이 앞에 있었다. 연애가 끝나면 바로 다음 연애. 정리가 덜 되어도 일단 이어가야 한다는 압박. 결혼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못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38살 6월 이후, 처음으로 길게 혼자 있게 됐다. 생각보다 조용했고, 생각보다 괜찮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관계도 정리됐다. 예전에는 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겼던 장면들에서 이제는 멈춰 서게 됐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말했고, 그 말 이후 멀어진 사람도 있었다. 붙잡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소개는 계속 들어온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만나봤을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준이 달라져 있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 좋다던 사람이 평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가능하고,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에서 내가 찾아오면 만나보겠다고 했을 때 예전의 나는 “그래도 한 번 가보자”였을 것이다. 이번에는 “왜 내가?”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소개해 준 사람은 “너 나이면 이 정도 조건이면 감사해야지”라고 말했다. 막상 들여다보면 상대는 나보다 연봉이 낮고 나이는 더 많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신다. 나는 둘 다 하지 않는다. 조건의 우열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나를 감사해야 할 위치에 두는 구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결혼이라는 목적이 앞에 있어서 이런 불균형을 그냥 넘겼다. 지금은 다르다. 어차피 아이를 중심에 둔 결혼을 상정하기 어렵다면, 남는 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인지, 같이 있을 때 즐거운지, 최소한 서로의 상황을 알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인지다. 그 기준으로 보니 “이 사람은 아니겠다”는 판단이 빨라졌다.
스스로도 점검해봤다. 내가 예민해진 건 아닐까. 예전에 들었던 말처럼 괜한 노처녀 히스테리인가. 그런데 돌아보면 근거 없이 싸움을 건 적은 없다.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다. 다만 예전에는 넘어갔을 장면에서 이제는 생각을 한 번 더 할 뿐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은근히 업신여기는 말투나 책임을 슬쩍 넘기는 태도를 예전에는 그냥 피했다. 지금은 맞불을 놓지는 않지만, 적어도 받아칠 수는 있게 됐다. 선을 긋고 말은 한다. 이 변화가 성격이 나빠진 것인지 한동안 고민했지만, 어쩌면 그전의 내가 지나치게 허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작년 6월의 통보를 기점으로 처음으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잘하지도 못하고 매번 근육통에 시달리지만 묘하게 재미있다. 체력이 줄어드는 걸 체감하고, 건강이 화두가 되면서 비로소 알았다. 내가 생각보다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오래 허락하고 있었다는 걸. 연애에서도, 가족에서도, 직장에서도. 무념무상으로 살았던 게 아니라, 그냥 에너지를 계산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요즘은 사람을 덜 만나고, 일정은 단순해졌고, 관계는 조금 더 정돈됐다. 외로움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소음이 줄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제는 의지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를 먼저 만들고 싶다. 나를 중심에 둔다는 게 이기적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내가 존중받는 구조 안에서 사람을 만나겠다는 것. 생각해 보면 특별한 요구는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야 그걸 요구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