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담론에서 빠져 있는 사람들
나는 어릴 때 미국에서 약 10년 정도 살았다. 그래서 영어로 기본적인 업무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다. 지금 회사에서도 해외 법인과 협업하는 일이 많다.
함께 일하는 미국 법인 차장 한 분이 있다. 그런데 이 분과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가 아니라 대화 방식이다.
이 분은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스타일이 아니다. 본인이 질문을 해서 내가 설명을 시작해도 중간에 말을 끊고 바로 본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상사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상황에서도 비슷하다.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대화의 맥락이 자주 끊긴다.
예를 들어 일정상 더 이상 수정이 어렵다고 설명하면 그 부분에 대해 나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일정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팀장이 정한 일정이다. 나는 단지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입장일 뿐이다. 그 점을 설명해도 감정적인 반응이 계속 나에게 향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인신 공격에 가까운 말이 나오기도 한다. 메일로 디렉션을 정리하면 “일부러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공격하는거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는 식으로 사과를 받을 때까지 화를 내거나 공격적인 반응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는 구두로 이야기 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기록이 남지 않고, 메일로 정리하면 또 다른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반복된다.
시간대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는 밤 12시나 1시까지 일을 하는 날도 있는데, 미국 기준으로는 낮 시간이다 보니 그 시간에 나에게 앞뒤 없이 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 다른 업무를 처리 중이라고 이야기해도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업무 조정 역시 쉽지 않다. 처음 자료를 받을 때 일부 내용이 빠져 있는 경우가 있고, 이후에 이전에 이야기되지 않았던 추가 요청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한다. 그 추가 요청의 규모도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기존 작업량의 몇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설명을 한 번으로 끝내기 어려운 상황도 자주 발생한다. 혹시 내가 영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나 싶어서 같은 내용을 세 번, 네 번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나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나는 미팅이 끝나면 반드시 현재 확정된 범위와 해야 할 일을 문서로 정리해서 공유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 진행 과정에서 혼선이 계속 생기기 때문이다. 때마다 욕을 먹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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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피로가 쌓였다.
요즘에는 이 사람과 일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성격이 안 맞는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협업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긴장과 피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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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DHD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대부분의 글은 ADHD 당사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ADHD가 개인에게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료는 상당히 많다.
그 자체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은 거의 찾을 수 없다.
ADHD를 가진 사람과 협업하면서 겪는 경험, 반복되는 업무 조정, 감정적인 갈등,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 같은 것들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다.
현실의 직장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한다.
요구가 계속 추가되거나 방향이 자주 바뀌면 업무 범위를 계속 다시 맞춰야 한다. 처음 합의했던 일정이나 작업 범위가 뒤늦게 수정되거나, 이전에 논의되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는 느낌도 생긴다.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실제 결정 구조와 상관없이 실무 담당자가 계속 설명하고 조정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면 업무 부담이 특정 사람에게 집중되기도 한다.
여기에 감정적인 반응까지 더해지면 협업 자체가 긴장된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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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하다.
왜 ADHD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당사자의 입장에서만 존재할까.
같이 일하는 사람의 경험은 왜 거의 기록되지 않을까.
ADHD를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협업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겪는 피로와 소진 역시 현실적인 경험이다.
그 이야기도 함께 존재해야 직장에서의 협업에 대해 조금 더 균형 잡힌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