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사

참의사는 의사들의 적인가?

by 명인
우리가 선행을 함에 있어서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그 행동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요즘 중증외상센터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


더 이상 의학드라마를 볼 수 없는 몸이 되었기에 보지 않았지만 친구들 통해 몇 개의 짤과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드라마다 보니까 현실과 다른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 일단 여기서 그 누구도 '항문외과'라고 하지 않아..."


정확히는 대장항문외과다. 아니면 대장파트, 콜론(Colon)파트라고 부르지 '나 항문외과 교수 누구누구요.'라고 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선생님 보셨어요? 전 1-2화 보기는 했는데 조금 오그라들어서 못 보겠더라고요."


같이 수술 준비하던 우리 SA(수술보조 전문간호사) 선생님이 말했다.


"전 안 보고 친구들이 얘기하는 것만 들었어요. 콜론파트 황승현샘이 엄청 화내던데요? 거기서 '항문외과'가 응급이 거의 없고 수익도 좋다고 나왔다고... 실상은 우리 외과에서 가장 응급수술이 많은 파트가 콜론파트고 페이도 노동강도에 비해 전혀 안 받는데 말이죠. 하하하."


"아마 그 드라마에서는 대장 말고 '항문'만 보는 분과인가 보죠."


깔깔 웃으며 수술 준비하는데 얘기가 흥미로우셨는지 원래 마취과 텐트 뒤에 보통 조용히 계시는 마취과 선생님도 이야기에 참여하셨다.


"아 근데요...! 거기서 마취과가 막 엄청 바보로 나와서 보는데 좀 속상했어요."


"그래요?"


"주인공이 마취과 교수한테 엄청 뭐라고 하고 소리 지르고... 사실 실제로 우리 모두 서로 예의 있게 대하며 존중하잖아요?"


"역시 드라마니까 그랬나 봐요. 너무 마음의 상처 안 받으셔도."


"맞아요 마취과가 너무 바보같이 나와서 약간 마상 입었어요. 거기서 막 마취과한테 왜 방 빨리 안 열어주냐고 하면서.."


음? 그 부분은 고증이 되어있는데?


"그래도 드라마 나오면서 중증외상 분야가 화두가 되고 응급수술들에 대한 지원도 높아졌으면 좋겠네요. 사실 전 외상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꼭 외상이어야 중증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수술이 필요한 모든 중증 환자들이 수술을 잘 받을 수 있게 국민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사람이 5명 필요하다고 하면 1명을 더 뽑아줄까 말까 하는 것이 병원이다. 오늘도 내년 인력을 어떻게 배분할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외상과 응급수술 분야를 키워 전문인력을 배정하자는 안건에 대해서 토론이 오고 갔다.



"아니 지금 외래 환자를 수술하고 병동에서 관리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응급/외상 환자를 더 받자는 말입니까? 거기에 사람 뽑아버리면 다른 분과는 아예 티오를 못 받는다구요."


모든 것은 파이 싸움이라고 한다. 한 분야에 리소스를 늘려주면 다른 분야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금 이 의료사태 때문에 응급 환자들은 더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어. 지금 겨우 몇 주니어 교수들이 희생하면서 유지하고 있는데 계속되면 무너져. 응급과 외상을 전문으로 볼 시스템을 우리도 만들어야 해."


과장님이 다른 교수들을 타일렀다. 특히 최지호 교수님께서 가장 반발이 심했다.


"원래 그런 건 다 주니어일 때 하는 거였어요. 우리도 다 했다구요. 응급이나 외상 환자가 많아봤자 얼마나 많다고 전문인력을 뽑아도 그냥 빤히 놀고 있을걸요? 그리고 지금 우리 목표가 병원 매출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것이 목표라면 응급환자들을 많이 하면 좋을 거 없잖아요."


"우리가 대학병원인데 그런 환자들을 다 돌릴 수는 없지 않냐? 그리고 지금은 또 상황이 다르잖아... 예전처럼 주니어 교수들이 다 독박쓰게 만들 수 없고 체계화된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지."


그러자 최지호 교수는 젊은 교수들을 향해 째려봤다.


"너희 그렇게 힘드니? 그렇게 응급수술 때문에 일이 많아?"


"야 최지호. 애들한테 그러지 말고.."


우리들은 그냥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앉아있었다. 여기서 막내라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다행히 다른 교수님이 우리 대신 대화를 이어가셨다.


”응급전문 팀을 키워서 수술을 많이 하는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그 환자들이 병실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정규 환자들이 자리가 없어서 입원을 못 해요. 그걸로 인해 오히려 병원 매출은 떨어지겠죠.“


역시 이것도 파이싸움. 그리고 응급수술에 대한 수가가 터무니없이 낮아서 그렇다.


“사실 수술방도 문제가 될 거고. 지금 간호사들이 겨우 버티고 있는데 수술이 늘어나면 불만도 많이 나올 겁니다.“


그건 맞다. 병원은 인력을 절대 미리 보충해주지 않을 테니까. 반대 목소리가 많아지자 과장님은 우리 젊은 교수들 쪽을 바라보시며 물어보셨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우리 병원도 더 좋은 병원으로 도약하려면 좋은 체계를 갖춰야 하고…"


“너희 일이 바로 편해지는 것이 아니야. 시스템이 잡히기 전에는 오히려 일이 늘어날 수도 있어. 두 배로 일하게 되는 거라고.“


최교수님이 다시 크게 반발을 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어차피 이 팀을 만들고자 하는 것의 목표는 체계를 갖춰서 응급환자들 뺑뺑이 안 돌리고 진료를 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저희 업무 분담은 2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몰랐네 너 정말 참의사다.”




예전에는 분명 "참의사"라는 단어가 좋은 뜻이었을 것이다. 선행을 베풀고 환자들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의사를 부르는 칭호였을 것이었고 모든 의대생들의 꿈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참의사는 쓸데없이 낭만적이고 호구 같은 이상을 좇다 다른 의사들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


참의사는 의사의 적인가?


사실 이 현상은 의사들이나 의료계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있다. 세상은 갈수록 냉소적이고 염세적으로 변해 어떠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못할 망정 어리석다고 조롱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사람의 선행을 굳이 조롱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렇게 해야 그 선행을 하지 못 하는 자신이 정당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 용기에 대한 시기일까? 애초에 세상이 선행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존중해주지 않아서 생긴 현상일까?


결국 중요한 건 밸런스다.


예를 들어 난 딱히 나 자신이 참의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도 힘들 때 일을 빼려고 하기도 하고 당직 때 콜을 받아야 하는데 졸려서 잠들어버린 적도 많다. 나도 이왕이면 일 적게 하고 돈 많이 받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하는 노력과 희생을 충분히 알아주지 않으면 화가 나고 하기 싫어진다. 그렇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의사이다.


그리고 진정한 참의사들은... 그래 그런 의사는 우리 사부님 같은 사람들이지.


그렇지만 이 일을 하게 되었으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의 기준이 있다. 그리고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닥 대단히 숭고한 뜻이 없는 내가 참의사라고 조롱받을 정도면 지금 뭔가 대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젊었을 때 사부님은 외과 의사로서 살다가 여러 딜레마에 빠질 땐 "무엇이 환자를 위한 길인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가끔 그 결정이 마치 의사들을 괴롭게 하는 결정이 된다는 사실이 슬프다. 의사와 환자는 적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느껴진다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서로 조금씩 희생하면서 좋은 의료시스템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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