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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을 보내며

by 강민경


한시 반,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고 하얀 가운을 입은 교수님이 급하게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곧 오후 진료 첫 환자가 뒤이어 들어갑니다. 보통 진료시간보다 더 길어집니다. 두번째 진료 환자인 저는 길어지는 시간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잠깐의 지루함 끝에 나타난 약을 다시 복용하게 된 환자와 그 보호자를 보고는 작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곧이어 들어가니 교수님의 기분이 가라앉아있어보입니다. 아까 유난히 급해보이던 발걸음과는 다르게 느릿하게 가라앉은 모습이었어요.


가볍지만 혹시 몰라 알려드린 증상에 교수님이 입 밖에 뱉는 단어 사이의 호흡이 느려집니다. 신중해지셨음을 느낍니다. 의사로서의 피곤함을 봅니다.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을 보는 것, 그 보다 더 힘이 들여지는 건 아마 아팠던 사람이 다시 아픈 것과 그 불안을 보는 일일 겁니다.


어제 빛이 점점 꺼지는 바깥을 바라보며 건넨 말이 떠오릅니다.

“아팠던 일이 그리 불행했던 건 아니었어”

다른 이가 저를 불쌍하게 혹은 안쓰럽게 본다는 걸 알지만 그게 아주 틀리지도 또 아주 맞지도 않아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생각보다 잘 견디고 있다는 말을 하고 대단하다는 격려를 받을 때에도 그저 끄덕였습니다. 그 모든 일들이 어쩔 수 없음을 안다는 허황을 즐겼습니다.


교수님의 시선에 서봅니다. 아픈 나는 아팠지만 아주 힘들지는 않았고, 아주 힘들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삶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걸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얼마나 쓸모없는 일일까요? 다른 사람의 안쓰러움은 결국 그들의 몫이지 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 앞에 들어갔다가 나온 환자에게 죄책감을 느낀 내가 왜 생경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짧은 진료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교수님이 힘 없는 목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한테 처음 들어본 말이었네요. 몇 년 간 친한 친구들 보다도 더 자주 본 분에게 듣는 힘 없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네요. 저는 아직도 제 아픔의 상흔이 안쓰럽고 자랑스럽고 불안하고 기쁜 감정들을 일으키나봅니다. 교수님을 이제 못 보게 되면 꽤나 서운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상흔에 정이 든 그 자체는 아픔을 특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까요?


내일이 되어 찾아올 내년에는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설레일까요? 그 파동을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교수님의 힘 없는 그 새해 인사 덕분에 ‘견뎌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인사는 제가 참 많은 걸 겪고나서 얻게 된 한마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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