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날이 갑자기 훅 추워졌더랬습니다. 수능날이었네요. 이상하게 수능날 즈음만 되면 날이 확 추워지는데, 그게 제가 수능을 볼 때도 불문율이었어요. 참 신기하죠. 이 쌀쌀한 날에 수능을 보신 모든 분들께 응원을 드립니다. 추운 날, 낯선 학교에서, 십 년이 넘는 배움을 쏟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200*년 11월 이른 시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학교를 아빠 차를 타고 갔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학교 후배들이 응원을 나왔고, 저는 교복이 보일까 코트를 꽁꽁 싸매고 고사장으로 들어갔었습니다. 모의고사 때는 외국어영역 (지금은 영어더라고요?) 시험 때만 되면 졸려서 헤드뱅잉을 하다가 시간이 모자라서 다 찍었었는데, 수능 날엔 무슨 일인지 정신이 멀쩡해서 시간 내에 문제를 다 풀었었습니다. 제2외국어 시간 때는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께서 감독 교사로 오셨고, 절 알아보신 선생님께서는 남몰래 어깨를 토닥여주셨습니다. 그때였을까요? 어쩐지 울적해졌습니다. 긴장이 풀렸나 봐요. 정신없이 가방을 챙겨 교문으로 나가는데 엄마와 여동생 얼굴이 보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울면 안 되는 정도로 공부를 안 했었는데, 가족들 얼굴을 보니 그냥 갑자기 눈물이 한 바가지로 눈가에 고였어요. 그간 그리 고생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수능이라는 그러니까 그간 학생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했던 압박의 설움이 터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뭐 가채점해보고 재수를 하느니 마느니 부모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고요. 다행히 모의고사 때보다 성적이 좋아서 별 고생 없이 입시에 성공했습니다. 그간 수능이 내 학교생활을 평가하는 중차대한 허들이라는 게 참 마음에 안 들었고, 그럼에도 순응할 수밖에 없었고, 압박을 받으면서 공부는 하고 싶은 것만 했고, 수능이라는 산을 넘고 보니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도와 함께 불안도 같이 왔습니다. 십여 년 간 '수능'이라는 공포에 갇혀 살았는데,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오는 허무함이 이상했고, 혹여나 내 유일한 기회를 놓쳐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30대인 지금은 '그때로 돌아가면 미친 듯이 공부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허들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은 이들에게 대단하고 고생 많았다는 말과 함께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더라도 그리 절망할 것 없다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기회는 여러 번 찾아오니까요, 정말로!
추운 날, 긴장하면서 배운 걸 토해내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남은 과정 잘 마무리하시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 하고 싶었던 것도 도전하시면서 잘 털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