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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나는 올해 잘 살았는가?'

by 강민경


"나는 올해 잘 살았을까?"


작년 연말, 매번 꺼낼 때마다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라임색의 다이어리를 하나 사들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종이에 달력을 그리고, 할 일을 적고, 떠오르는 영감을 적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던 다이어리는 어느새 손때가 탔고, 빈 종이는 몇 장 남지 않았다. 하도 열었다 닫았다 해서인지 이음새도 해져있다. 듬성듬성 페이지를 들춰보니, 하고 싶었던 일이 해야 하는 일보다 많았다. 욕심이 많았지만, 욕심이 많은 만큼 부지런하지 못했다고 평할 수 있을까? 혹은 꿈이 많아서 한 해를 희망으로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작년보다는 달력이 꽉꽉 차 있었다. 아팠던 시기엔 달력에 공간을 넣는 일이 까만 글씨로 채우는 일보다 시급했다. 올 한 해는 아프지 않은 시기, 환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일상의 시작이었다. 작년 달력의 빈 공간만큼 올해 달력을 채워야 그간의 버린 시간과 통장 잔고를 메울 수 있었다, 아니 메울 수 있는 기반이 생길 수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해서 사업자를 냈고, 책을 홍보하고 전시했고, 센터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영상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이 모든 것을 헤아려보니, 사람들이 왜 나보고 "넌 항상 바쁘잖아, 너 뭐 많이 하잖아"라는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보다 얻는 결과를 돈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간 비운 곳간을 채우기란, 마이너스를 채우고 기반을 다지는 일이 미지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남에게는 부지런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처럼 비쳤다. 그 간극이 입과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간극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고, 뭐가 되지 않는다는 초조함이 마음을 간지럽혀 뭔가를 더 해내야 한다 재촉했다. 아직도 그것은 진행형이지만, 연말정산으로 이렇게 글을 써보니 나는 생각보다 많은 걸 했다.


'무얼 하든 결과가 따라 나와야 한다는 강박이 나도 모르게 나를 채찍질했구나'

연말이 되어서야, 연말을 정리하는 대표적인 시기가 되어서야 나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들여다본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그 기반을 다졌다는 생각으로 희망을 붙든다. 그것이 아닐지라도 나는 희망을 붙든다. 무얼 하든 그에 따른 결과는 어떻게든 찾아오고, 그것이 얼마나 시간이 흘러 올진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해낸 것에 대해 희망을 붙든다. 그러면 나는 2023년을 살 수 있고, 2023년에 뭘 해야 하는지 보인다. 연말정산의 마음으로 12월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조금 더 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한 해를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 메모장에 질문의 답을 적어보시길.


Q. 올 한 해, 내가 제일 잘했다 싶은 일은?

A. 센터 강의를 포기하지 않고, 1학기 더 추가해서 연속으로 한 것, 사업자를 3개 분야로 나누어 낸 것,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프리다이빙에 도전한 것


Q. 올 한 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았던 도서는?

A.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Q. 올 한 해 제일 어려웠던 일과 제일 성취감 드는 일은?

A.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강의는 자신 있다 생각했는데, 그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그리고 2학기 동안 고뇌를 이겨내며 글쓰기 강의법을 만들어내어 결국에 어르신들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드린 것이 제일 성취감이 드는 일이었다.


Q. 올 한 해, 제일 아쉬웠던 일은?

A. 해야 하지만 어렵게 느껴진 (사업자 업종) 일을 미루고 정리하지 않은 일, 게으름 피우는 걸 진정으로 오래 즐긴 것.


Q. 2023년에 하고 싶은 일은?

A. 방을 새롭게 꾸미는 일, 책장을 사고 책 정리하기, 새로운 책 만들기, 다양한 연령층의 글쓰기 인력을 늘리는 일, 프리다이빙 자격증 따기, 3개 업종 사업자 모두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것, 새로운 글쓰기 스타일 만들기, 수면제 끊기,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 쌓기 +@


단답형으로 쓰면서 내가 왜 이렇게 답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떠올랐다. 이 스토리를 내 다이어리에 적는다면 연말정산은 더 완벽히 끝나겠지? 여러분도 이 질문들 외에 스스로에게 연말정산을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내려보고, 그 답이 왜 나왔는지에 관한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에 성취를 느끼고 어떤 것에 실망을 하는지' 더 정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거나, 스스로 혼자 하기엔 마음이 안 먹어진다면? '연말정산 글쓰기' 원데이 클래스 도움을 받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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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NEW YORKER DECEMBER 10TH, 1979 by CHARLES E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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