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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루일글

추억의 맛, 고구마순

by 강민경

고구마순을 아시나요? 어렸을 땐 고구마순이라는 식물이 따로 있는 줄 알았어요. 그냥 고구마 맛이 나는 나물 같은 건가했죠. 다 커서야 실제 고구마 뿌리에서 나는 줄기라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렸을 땐 고구마순이 어른 입맛에만 맞는 어려운 나물처럼 느껴졌거든요. 늘 낯선 음식이었죠. 그런데 그게 너무 익숙한 고구마에서 나온 거라고 하니 낯설게 느껴지는 벽이 사라졌습니다. 요즘은 고구마순이 식탁에 올라오면 밑반찬을 집듯 자연스럽게 먹어요. 고구마 맛이 나는 건 아니고, 아삭한 식감 맛으로 먹습니다.


참 단순한 맛을 가진 고구마순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은 손질된 것도 팔지만 예전에는 살아서 밭으로 갈 듯한 싱싱한 이파리들을 묶어서 팔았거든요. 생으로 파는 고구마순을 사다가 겉의 껍질을 벗겨내야 합니다. 뿌리 부분 끝 쪽을 손톱으로 끊어내면 껍질이 딸려 벗겨지거든요. 한 번에 벗겨지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중간에 끊겨버리면 성질이 납니다. 계속 껍질을 까다 보면 손톱 밑 살이 고구마순에서 나오는 물에 절여져서 아리고요. 부지런히 껍질을 깐 고구마순은 한 번 삶아내야 합니다. 너무 푹 삶으면 아삭거리는 감이 사라지고, 너무 안 익히면 맛이 없기 때문에 적정한 익힘 선을 찾아야죠. 사실 시간과 노력 대비 얻는 양은 많지 않습니다만, 한번 삶아두면 고등어찜도 해 먹고, 나물도 해 먹고, 김치도 담가 먹고, 들깨와 건새우를 넣어 찌개도 끓여 먹죠. 특히 제 여동생이 고구마순으로 끓인 들깨건새우찌개를 참 좋아해서, 저희 엄마가 많이 만들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한 여동생이 집에 오면 배달 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엄마는 꼭 고구마순을 넣어 들깨건새우찌개를 끓여놓거든요. 그럼 여동생은 배가 불러도 꼭 밥 한 그릇을 그 찌개와 비우곤 합니다. 손질한 보람이라고는 없고, 맛도 특별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매년 어느 때에 찾게 되는 꾸준함이 담긴 음식이랄까요. 30여 년 동안 식탁에 올랐지만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고구마순이 반가운 건 아마 어렸을 적 엄마 옆에서 고구마순 껍질을 까던 기억이 나서일 지도요. 그 기억 때문에 맛을 모르고 지내고 싶었던 시간도 있었고, 그 기억 때문에 맛을 보려고 젓가락질하게 된 마음도 있고요. 변하지 않는 마음, 변하는 취향 그런 걸 모두 담은 음식이 저에겐 고구마순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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