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디>

나는 癩가 아니라 娜입니다.

by 나언

어릴 적에 듣던 말을 떠올립니다. 제가 못난 짓을 할 때마다. 꾸중을 들으며, ‘문디 자슥.’이라고 말씀하시던 노인들의 말씀입니다. 과거 문둥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은 오래 전부터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었고.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병이 남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예전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최근의 사회를 목도하며 어떠한 벌레를. 카프카를. 잠자를. 그리고 청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문디 자슥들이 참 많아진 세상입니다.

요즘의 세상에서는, 벌레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못난 표현을 하면서 문디 자슥으로 말합니다. OO충이라는 단어들은 너무도 다양해서 차마 셀 수가 없습니다. 직업에 붙이고. 월급에도 붙입니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 아버지의 월급을 말하며 ‘200충’ ‘300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지요.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벌레가 되어버리는 세상에 오늘을 살고 있는 청년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아니면, 오늘을 살고 싶었던 청년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 날에 자신이 벌레가 된 것을 깨닫습니다.

다양한 직업에 접미사로 붙어버린 ‘충’이라는 단어들. 고귀한 어머니들은 맘충이 되어버렸고. 각계에서 헌신하는 직업들은 벌레가 되었으며, 집과 월급의 수준에 따라 벌레의 등급까지 나뉘는 가혹한 세상에서 우리는 문디 자슥들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습작을 연습하며 이런 문장을 쓰기도 했더랍디다. “문둥이가 문둥이를 만들어!”라고요. 우리들은 과거에 한센인들을 기피하면서, 그들에게 괴로움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사람의 간을 가져가는 사람도 아니었고. 불행한 병마에 괴로움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이 혐오로 나아가는 사이에, 벌레가 된 여러 사람들은. 또 다른 한센인이었고. 그들은 괴로워하면서 누군가를 다시 벌레로 몰아세우고. 서로를 사악한 악마로 만들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어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어릴 때는 벌레가 많이 무서웠습니다. 여성들도 벌레를 싫어하고 기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의 언어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아보면, 저는 그런 환경에서 문디 자슥이 되었고. 사람들의 원망과 미움을 받으며 다른 사람을 더욱 혐오하려 노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병에 들게 된 것은, 스스로가 원해서 된 것도 아니며. 우연한 병마에 괴로움을 얻게 된 것인데. 사람들은 그들을 돌보기보다. 괴물이라며 내쫓고. 미워하고. 혐오하면서. 사회에 더 많은 혐오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닐지 깊이 고민합니다.

문디 자슥들을 미워하다가, 너무도 미워하여서 자신들도 남들에게 문디 자슥들이 되어버리는 이런 세상에. 오늘과 같은 날은 어떤 에세이를 쓸지 고민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청년들의 고민이오,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제는 청춘을 개탄했지만, 뜯어보면 언제나 아름다운 청춘의 예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한 명씩 그 깊이를 이해하다보면, 사랑할 수는 없더라도 미워하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사막을 걷는 청춘들을 위로해주고. 저처럼 청춘의 시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뒷사람을 위해 오아시스를 찾아봅시다.

우리라고 문디 자슥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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