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도가 있습니까?>

욥기와 백이숙제 열전에 대하여.

by 나언

독일의 문장가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내용은. 신과 악마가 인간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내용에는 아마 ‘욥기’라는 어떤 바이블과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항상 우리는 신앙을 의심합니다. 하늘에는 과연 도가 있습니까?

이것은 동양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생각이라서, 동양의 사람들도 항상 하늘을 의심했습니다. 하늘은 공명정대하다는 믿음.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과연 하늘이 우리를 지켜주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사마천의 백이숙제 열전처럼. 태사공은 말합니다.

어떤 시리우스가 지구에 등장하고 사람들이 믿음을 지니며 건물을 쌓아올렸던 날에. 우리는 하늘을 생각하며 그들이 우리를 지킨다는 생각을 지녔습니다. 인류의 운명은 시리우스가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며, 그것은 마치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 하늘은 우리에게 도를 가르치지 않으며, 하느님조차도 선과 악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저희는 항상, 언제나 하늘의 뜻을 추측하며 그것에 맞추어서 나아가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역사를 거슬러서, 우리는 불편부당한 일에 대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며 하늘이 원하는 뜻을 받아 모셨습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여성참정권이 보편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기원후로도 20세기의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과거 절대왕권을 휘두르던 왕들도 있었고. 영국의 명예혁명. 마그나카르타는 또한 우리가 하늘의 뜻을 따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권리헌장을 쓰면서. 지금은 어떠한 왕정이라도 입헌군주국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도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또한 직접적으로 길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시리우스라는 별이 나타나고 어떤 별들을 바라보며 괴베클리 테페를 쌓은 것처럼. 그리스도 이후로 우리는 2000년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우리는 하늘의 뜻을 따라가며 법과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서사시와 작품들은 계속해서 남겨지며 후대를 위해서 올바른 윤리를 가르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불편부당함에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그것이 법치와 제도였고, 심지어는 왕조차도 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지금의 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고대에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말하는 나폴레옹 법전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메테르니히처럼,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늘의 뜻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헌법이 제정되고. 그것은 모든 세계의 유산이 되었으나, 그 공화국은 스스로 무너지기도 했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모든 국민들이 행동해야만 하는 일이며, 정치라는 일은 결국 하늘을 바라보며, 그 뜻을 받드는 일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하늘이 제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우리가 하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만 합니다. 천하의 도가 있는지 하늘에 묻지 말고, 우리가 그 도를 어떻게 따를지 생각해야만 합니다.

저는 하늘이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뜻을 추측하며 지금까지 나아온 시간이 곧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늘의 뜻을 추측하며, 새롭게 진보하고 발전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새로운 방향을 말해야만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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