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분의 영화 번역가의 인스타그램을 읽고서, 여러 생각을 하며 글을 남깁니다. 핍진성이란 말은 영화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인데, 정확한 뜻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고 설명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말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과 사건사고에 있어서 우리는 참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단 생각을 또한 합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라고. “어떤 감정으로 이러한 글과 댓글을 남겼을까.”라고 여러 생각을 거쳐보는 습관이 일상에서도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지금 사회에서 우리가 서로 괴로움을 얻는 이유는 이러한 핍진성의 부족이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타나는 발현된 언어를 받아들이지, 그 사람에 대해서 이해를 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인터넷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최근 나타나는 여러 논란들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나 서로를 조금씩 이해를 하다보면, 왜 그러한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씩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역전되어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꺼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왔습니다.
서로에 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얼마나 기를 수 있는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여러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개연성과 핍진성을 따지지만 일상에서 그것이 노력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인간소외라는 부분과도 겹쳐가는 일입니다. 정작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인간보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보다, 그 사람의 실수를 물어뜯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 연예인의 애니메이션 추천이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넷플릭스와 같은 OTT로만 접한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지금 나오는 그러한 비판들에 있어서, 우리는 핍진성이 없다고 말하고 느껴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있어서 이상하다고 느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핍진성을 이해하고 느끼기 위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기보다, 그것에 대해서 싸우는 일들만 반복하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것은 “저 사람이 이상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인데, 서로라는 부분이 빠지고 인간이 소외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특히 서로를 잘 모르는 인터넷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유독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이견을 서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거대한 이유는, 이러한 핍진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 사이에서 주어진 인간소외라는 현상이 가장 거대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니, 차단을 합니다. 앞으로 소통할 생각이 없다는 선포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떻게 그 생각을 지니게 되었는지 계속해서 소통하려는 노력 또한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보다 언어가 사람보다 더 중요함을 발산하고 그것이 고착화될 때, 우리는 점점 후져지고 있습니다. 더 자극적인 루머. 더 자극적인 악플. 더 자극적인 코미디. 그러한 언어들의 범람에서 정작 소외를 받는 것은 이해를 받아야만 했던 평범한 소시민들이 아닐지 오늘 덤덤히 생각을 남겨봅니다.
- 이십삼년 유월 이십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