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보다 남은 것에 대하여
2023년, 나는 토론토로 생애 첫 이사를 하게 된다.
의미 없는 대학 졸업을 하고서 방황하던 26살의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애매한 어른으로, 스스로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두려워졌고
그런 감정이 최고조일 때 나는 이미 비자 신청을 하고 있었다.
낯설고도 낯선 나만의 공간이 그저 간절했기에 왜 토론토냐 물으신다면.. 이유는 없다.
아, 내가 사랑하는 단풍을 실컷 볼 수 있어서?!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도 가족들은 내가 정말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잘 들뜨곤 하는 성격 탓에
나는 그저 준비 내내 이미 떠난듯한 기분이었다.
출발 전날, 인천공항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집을 일찍 나섰다.
실감이 나기 시작하니 왠지 부모님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시집가는 기분이랄까.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껌딱지였는데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나가보려는 스스로가 낯설었다.
아마 엄마는 그런 내가 더 낯설기도 하고 섭섭함과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린 게 아닐까.
엄마가 전해준 편지는 차마 집에서 읽지 못하고 가방에 꼬옥 챙겨 집을 나섰다.
13시간의 비행은 첫 장거리 비행치곤 수월했다.
첫 기내식, 창 밖으로 끝없이 보이는 구름이 나를 최대한 설레게 만들었다.
두려운 마음이 더 컸던 와중에 한창 물들어갔던 토론토의 단풍이 첫인상을 진하게 남겼다.
내 몸보다 큰 캐리어 두 개를 팔 빠지도록 끌고 가던 와중에 호스트 제이슨을 만났다.
세상에,, 엘베가 없는 집이라니? 전혀 생각을 못했다.
우리나라는 작은 빌라여도 엘베가 당연한 게 아니었겠나..
다행히 건장했던 나의 호스트가 한 번에 옮겨주었다.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땡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어게인 땡큐 제이슨.
나의 임시숙소는 Ossington Ave에 위치해 있었다.
한국인들이 있는 북쪽은 최대한 피해 가장 귀여운 동네에서 토론토를 느끼고 싶어 선택한 곳인데
토론토 생활의 반 이상은 이 동네에서 보낼 만큼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거리를 거니는 꿈을 꿀 만큼 사랑했다.
토론토에서의 첫 끼는 잊지 못할 피쉬샌드위치.
바다가 있진 않지만 다양한 생선을 다루는 샌드위치 가게라는 것이 벌써 흥미로웠다.
토론토에서 먹었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워낙 맛있는 게 없긴 하다)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
그리고 나는 언젠가 정말 맛있는 피쉬샌드위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거리 비행도 잊은 채 나는 그렇게 숙소에서 뛰쳐나와 거리를 구경을 시작했다.
한창 가을이 무르익은 토론토의 거리는 정말 미안하게도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을을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겠지만 특히나 나에게 가을의 단풍은 봄의 벚꽃보다 더 설레게 만든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기를 늘 꿈꾸며..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면, 마치 나를 원래 알고 있었듯 미소를 보여주는,
반려동물에게나 사람들에게나 한없이 friendly 한 이 곳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관계 속에서 깊고 단단하게 쌓여가는 한국의 정과는 달리,
서로의 삶에 깊게 들어오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가볍고 자연스러운 호의를 건네는
이곳의 환대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타인에게 늘 날이 서 있기 쉬운 한국의 환경을 떠올리니
너무 촘촘한 연결감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온 우리에게도
때로는 서로의 삶을 인정해 주는 또 다른 다정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첫날밤엔 혼자 하는 여행에 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던 곳에서 13시간이나 떨어진 이곳이,
당장 전화를 걸어도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간이라는 게 문득 무서워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날이 밝으면 나는 곧장 거리로 나갔고 동네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집집마다 심어진 단풍나무가 아마 위안이 됐던 것 같다.
워낙 계획형이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토론토 카페는 제대로 리스트업 해왔다.
한창 커피에 빠져있을 때라 준비하는 내내 토론토 커피기행을 꿈꿨다.
첫 카페는 Little Italy에 위치한 Boxcar Social Laneway.
한국에서 온 지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이곳에서 "안녕하세요"를 듣게 될 줄이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서 몸에 긴장이 흐르고 있었는데 모국어를 들으니 바로 긴장이 풀렸다.
덕분에 이곳의 레귤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리스타 코말과 그의 레귤러 친구에게 집을 구하는데 조언을 좀 얻었다.
쉽진 않을 텐데 도움 주겠다고 연락하라고 했다.
그냥 집에 남는 방 없는지 물어보려다 참았다ㅎ.
토론토의 카페는 따로 한번 소개하고 싶다!
일주일 만에 집을 구해야 했기에 단풍 구경을 하다가도
집 구할 생각을 하면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다섯 살 마냥..
다운타운 맛보기에 놀란 K지방 사람.
높이 뻗은 빌딩 사이를 걷는 일은 흔하지 않았어서 감탄했다.
이후로도 선셋을 보기 위해 University Ave를 몇 번이고 찾아가곤 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나는
여전히 열쇠로 문을 여는 이곳에서 하루의 긴장이 열쇠 하나에 매달리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감각이라 주머니를 몇 번이나 더듬고
키 하나가 귀가를 책임진다는 사실이 현실 그 자체였다.
불편하기도 했지만 싫진 않았다.
사소한 불편함이 낯선 도시에서 나를 더 또렷하게 현실에 붙잡아 두는 느낌이랄까.
스트릿카를 타고 다운타운 구경 간 날.
처음 맡아보는 대마향, 홈리스들이 풍기는 냄새에 딱히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반년 넘게도 코를 찌르는 대마향은 적응이 안 됐던 것 같다,,
말로만 듣던 파이브가이즈 방문했는데
실전 리스닝에 당황해 토핑을 다 빼고 주문했던 나..
의아한 표정의 직원 덕분에 다행히 파이브가이즈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Thxs ma'am..
남은 식은 감튀를 야무지게 챙긴 것이 외노자의 삶이 시작 됐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감튀도 차갑고 내 마음도 차갑고...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동네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결을 몸으로 익혔다.
새로운 환경에 놓여도 곧 잘 적응하는 성격인 내가 다행이기도 했고
낯선 곳에서도 여전히 잘 보고, 느끼고, 쉽게 감동받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곤 했다.
한국에서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들면 늘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에 던져놓곤
기대감과 압박감 사이에서 불안에 떨었다.
이곳에서만큼은 환상 속의 도전을 굳이 찾아 나서지 않고
부족함과 넘침을 그저 조절 가능한 시간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말이다.
대단할 것 없는 내가 대담해지기까지의 이야기들..
또 들려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