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세 노교장의 낯선 세상 생존기
아침 지하철의 공기는 늘 비슷했다. 차갑고 빠른 공기였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더 바쁘게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화면 속에는 각자의 세계가 흘러갔지만, 바로 옆 사람의 표정은 보지 않았다. 오래 서 있으면 마음이 먼저 굳는다는 것도, 이곳에서 배운 감각이었다.
퇴직 후에는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할 줄 알았다.
“아, 선생님”
하고 불러주는 목소리 하나쯤은 어딘가에 남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장실의 문이 닫히자 함께 닫힌 것은 직함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은 그런 과거를 한 장의 승차권처럼 구겨서 주머니 깊숙이 밀어 넣는 장소였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알아보지 않았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서서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슬쩍 바라봤다. 흰 머리카락과 눈가의 주름이, 내가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드러냈다.
그때 문득, 예전 같으면 당연히 누렸을 ‘이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상태.
오랜 세월, 나는 누군가의 표정과 태도에서 상황을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상황 속에서 나 역시 한 명의 승객으로 섞여 있었다. 그 사실이 서운하다기보다, 낯설고 조금은 허전했다.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하철 안에서는 목적이 지워지고, 이동만 남는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목적지가 아니라, 삶의 방향에 관한 질문이었다.
나는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가.
그 길에서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가.
사람들은 각자의 무게를 들고 서 있었다. 누구는 회사의 무게를, 누구는 가족의 무게를. 나 역시 퇴직 후의 시간과 이름 없이 존재하는 시간, 아직 정해지지 않은 남은 시간의 무게를 들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으니, 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피곤한 어깨들. 그 얼굴들은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더 무겁게 버텨 온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그림자 속에서 오래된 제자의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역을 두 정거장쯤 지나자, 문 앞에 쇼핑카트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드르륵.”
바퀴가 레일 틈을 긁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한쪽으로 쏠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찌푸렸고, 누군가는 더 깊이 휴대폰 화면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 반응은 짧았지만 분명했다.
쇼핑카트를 끌고 들어온 사람은 그 반응에 익숙해 보였다. 오히려 먼저 몸을 접었다. 어깨를 좁히고, 카트를 조금 뒤로 당겼다. 누구의 발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문 옆, 가장 방해가 되지 않는 자리를 찾았다. 그 순간 나는 그 얼굴을 알아봤다. 사람들 사이를 훑되 누구와도 오래 마주치지 않는 눈빛,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기색.
그 눈빛은 오래전 교실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교실 구석에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워 담던 아이.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마음에 남은 눈빛. 교무실에서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복자는 늘 먼저 주변을 정리하던 아이였다. 그 얼굴이 지금, 쇼핑카트 손잡이를 붙잡은 채 지하철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복자.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다만 현실에서 다시 만난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얼굴보다 훨씬 얇아 보였다.
“선생님… 김도헌 선생님 맞으세요?”
그 한 문장은 내 가슴에 조용히 닿았다. 교장이라는 직함이 사라진 뒤에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반가움을 담은, 예의 바른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 아래에는 짙은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웃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그런 흔적이 있었다. 의도적인 계산이 아니라, 삶 속에서 몸으로 익힌 계산.
그 계산은 사소한 동작에서 드러났다. 말을 걸기 전, 그녀는 쇼핑카트 바퀴가 사람들의 발에 닿지 않도록 손잡이를 살짝 틀었다.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이 먼저 움직이는 습관이었다.
웃고 있지만 ‘괜찮아야 한다’라는 의무가 먼저인 표정. 자신의 피로를 뒤로 미루는 표정이었다.
교장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가며 사람들이 말하던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말과 표정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복자의 얼굴도 그랬다. 무너진 흔적을 스스로 지우며 버텨 온 얼굴. 돌봄을 맡은 사람은 늘 괜찮아야 한다는 말들이, 그녀의 표정에 오래 눌어붙어 있었다.
“오랜만이다, 복자.”
그 말 뒤에는 수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묻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밝은 표정은 체력으로 버티는 마지막 방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 준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듯 보였다.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대신 카트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말보다 먼저, 그녀가 숨을 놓을 수 있는 거리를 지켜 주고 싶었다.
쇼핑카트 안에는 쌀과 두부, 약봉지가 보였다. 장을 급히 본 흔적이 역력했다. 물건들은 모두 ‘지금 당장 필요한 것’뿐이었다. 취향이 없었다. 그녀의 장바구니는 늘 그렇게 생겼을 것이다.
그녀는 마트 캐시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온 길이라고 했다. 계산대 앞에서 바코드를 찍고 잔돈을 건네는 일.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저
“여기요.”
하고 카드만 내밀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더 밝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를 먼저 꺼냈다고 했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설명을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야… 그다음을 할 수 있어서요.”
그다음은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이어지는 돌봄의 동선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하루는 ‘집’이 아니라 ‘돌아다님’으로 이루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약을 챙기고 밥을 차리고 병원 날짜를 기억하는 일들.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확인하고, 약봉지에 날짜를 다시 적는 일. 그런 일들은 늘 작아 보이지만, 하루를 통째로 갉아먹는 방식으로 사람을 지치게 했다.
‘다 했다’라는 문장이 그녀의 삶에는 거의 없었다.
그녀는 카트 손잡이를 한 번 더 세게 쥐었다.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 손이 익숙했다. 예전 교실에서 먼저 움직이던 손.
“저는요… 늘 그다음이 먼저였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도와주고 싶대요. 근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은 체념에 가까웠다. 화를 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두 집을 오가는 동안 그녀에게 남는 것은 ‘집’이 아니라 ‘길’이었다. 친정에서 시댁으로, 시댁에서 다시 집으로. 집과 집 사이의 거리만큼 그녀의 하루가 잘려 나갔다.
그 길 위에서 그녀는 늘 ‘좋은 딸’이자 ‘괜찮은 며느리’였다.
“가끔은요, 선생님.”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라지고 싶다’라는 말이 아니라, ‘잠깐만이라도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
그녀의 삶은 언제나 ‘나중에’라는 말에 갇혀 있었다. 그 ‘나중에’가 너무 오래 이어지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잃는다. 내가 쉬는 건 나중에. 내가 아픈 것도 나중에.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는다.
열차가 다음 역을 향해 속도를 줄일 때, 그녀의 다리가 잠깐 흔들렸다. 손잡이를 놓칠 만큼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순간을 보았다. 아주 짧은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그 짧음이 더 무서웠다.
그녀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오랫동안 이런 순간을 넘겨온 사람의 몸이었다. 흔들린 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 카트 손잡이를 더 단단히 잡았다. 그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걸 나는 봤다.
그녀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돌봄이 사랑인 건 아는데요.”
오랫동안 속으로만 되뇌며, 입 밖으로 내보낼 타이밍을 기다렸던 문장.
잠시 멈춘 뒤, 아주 낮게 덧붙였다.
“가끔은… 제 인생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은 울음이 아니었다. 담담했기에 오히려 더 깊게 아팠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끝내 떨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를 서두르지도 않았다. 교장 시절의 습관이 나를 밀어 올렸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알았다. 이 순간에는 답보다 침묵이 먼저라는 것을. 말을 얹는 순간, 그녀의 용기가 작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열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화면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더 깊이 꽂았고, 누군가는 창밖을 보며 졸았다. 그 평범함 속에서, 그녀의 고백만이 더 선명해졌다. 그 흐름 속에서, 복자의 고백만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나는 곁에 서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 대신 쇼핑카트 손잡이를 잡았다. 예전 같았다면 조언을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알았다. 조언보다 인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너, 지금까지 정말 잘 버텼다.”
그녀의 얼굴은 ‘힘들다’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족 돌봄 지원센터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세상에는 제도가 있지만, 복자에게는 닿지 않았다.
“거기…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 짧은 동작이, 마음속에서 오래 싸우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마치
‘쉬는 게 가능하다는 말 자체가 낯설다.’
는 듯한 얼굴이었다.
“네가 무너지면, 그다음은 아무도 못 해.”
내가 그 말을 하자,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그건 안도이기도 했고, 동시에 슬픔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기 전까지는, 내려놓을 수 없었던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도 무너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처음 허락해 준 것처럼.
열차는 몇 정거장을 더 달렸다. 그러나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릴 역이 다가오자, 나는 카트를 다시 그녀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문이 열리고, 그녀는 플랫폼으로 내려섰다. 카트를 끌고 멀어지는 뒷모습은 여전히 바빴지만, 걸음의 속도는 조금 느려진 것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그 작은 변화가 그녀를 조금은 살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열차 문이 닫히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은 채, 조금 전의 장면을 천천히 되짚었다. 내가 한 일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묘하게 묵직했다. 그 묵직함은 후회가 아니라, 책임에 가까웠다.
‘나는 아직, 누군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