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온쌤 Aug 18. 2020

비 오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대한제국의 역사를 보다

올여름은 도대체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맑고 높은 구름을 보였다가 다시금 스콜 같은 비가 쏟아진다.

습하고 언제 내릴지 모르는 구름을 보고 우산 하나 꺼내 들고 덕수궁으로 향한다.


방학을 하고 여유가 생기자 제일 먼저 덕수궁 대한제국 역사관 관람을 신청했다.

덕수궁은 궁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다.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역사의 굵직한 순간을 함께 했던 곳이라서 올 때마다 새롭고 애처롭다.


나는 들어가기 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조선 호텔 앞을 바라본다.

조선호텔 앞에 대한제국을 선포한 환구단의 일부가 호텔의 부속품인 양 남아 있다.

환구단 옆에 조선철도 주식회사가 생기고 그곳이 다시 조선호텔이 되었다.

덕수궁 들어가기 전 대한문 앞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대한제국의 슬픔이 느껴진다.

조선호텔 앞 환구단


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 (경사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궁)이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의 저택인 이곳을 행궁으로 삼았고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기고 나서 아버지가 계셨던 이 곳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고종이 죽고 순종이 아버지 고종의 궁호를 '덕수'라고 정하면서 이곳의 이름이 덕수궁이 되었다.

'덕수'라는 이름이 보통 퇴위한 왕이 머무는 거처로 상황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보통 퇴위한 상황이 사망하면 원래의 이름으로 돌려놓는 것이 관례란다.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우리나라는 이미 그럴만한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고 그 상태로 쭉 덕수궁이 되었다.

덕수궁을 원래의 이름 경운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그냥 덕수궁으로 하기로 하였단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해도 경운궁이 원래 이름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석조전으로 향했다. 정원도 나무도 참 예쁜 곳에 서구적인 건물 석조전.

야경으로 보면 더 아름다운 이 곳, 사진 찍기 좋은 이 곳.

내부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석조전


예약시간 10분 전 문이 열리고 대한제국의 문양인 오얏꽃 무늬가 그려진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이 문양은 커튼에도 가구에도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내부는 굉장히 화려하고 100년 넘은 그때 그 당시의 가구들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각 방마다 설명판 속에 실제 그 당시 가구들이 표시되어 있고 나머지 가구들도 최대한 그때의 분위기에 맞추어 복원되었다고 한다.

 아래 첫 번째 사진의 대리석 테이블, 세 번째 앞쪽에 회전 책장, 옷장 등은 모두 100년 넘은 가구들이다.


고종이 이 곳을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공사관이 주변에 많은 이 곳으로 와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외국의 문물을 적극 받아들여 이런 궁궐을 지을 때, 고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황금색은 황제의 침실, 붉은색은 황후의 침실이나 순헌황귀비가 그 무렵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여 이 곳에 머물지는 못하고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머물렀다고 한다. 고종은 실제로 이 곳에 많이 거주하지 않았고 영친왕이 일본에서 귀국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순헌황귀비가 돌아가셨을 때 영친왕이 귀국해서 있었으나 일본이 전염병이 우려된다며 이 곳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단다.

한 나라의 왕이나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 맘대로 볼 수도 없는 곳.

화려한 가구로 감싸고 있지만 슬픈 공간이다. 2층 테라스 주변에 사진이 여러 장 있는데 그때 사진에 함께 나왔던 사람들도 친일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중 한 사진에 순종이 중학생 무렵 주변의 모든 고위 대신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이 곳을 오면 늘 드는 생각이 내가 그 당시에 사는 왕이었다면, 고위 대신이었다면, 그리고 일반 백성들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지만 그때 이랬으면...이라는 가정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그 순간,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여러 번 해 본다.

화려하지만 슬픈 곳. 화려하지만 가슴 아픈 곳. 나에게 석조전은 그런 곳이다.



해설하시는 분의 설명에 따르면 비 오는 날은 기와를 보러 궁에 오는 거란다. 비를 머금은 기와는 색이 조금씩 다르게 빛이 난다고 한다. 석조전을 보고 나오니 정말 많은 비가 쏟아져 움직일 수 없었는데 이 설명을 듣고 천천히 기와의 색을 감상해본다.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와 기와. 그리고 그 밑에서 비가 멈추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다림.

올 해의 이 지루한 코로나와 장마 그리고 많은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조용히 그 혼란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나는 기와의 색과 같은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희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