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가정적이지만 다정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는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자주 말해주면 좋겠다는 나의 요구에
'윌 배달 시켜달라고 해서 미안해요.
윌 배달 시켜줘서 고마워요.
나의 건강을 생각해 준 당신을 사랑해요'
뭐 이렇게 이야기했더란다.
묵묵히 내 말을 다 듣고 따라주는 편이지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를 듣기는 쉽지 않다.
이런 내가 가장 서운했던 것은
어린아이를 키운다며 휴직했을 때, 남편이 회식하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지내며 아기 띠 매고 밥을 먹는데
'어른 사람'들이랑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는 회식은 정말 부러웠다.
그때는 남편을 따라 연고도 없는 고장에서 지낼 때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머리로는 이해한다지만 회식날이 되면 뾰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말로 날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인가?
그건 또 아니더라.
그래서, 회식하는 날은 나도 맛있는 거 하나만 사다 달라고 했다.( 역시 먹는 게 참 사람 치사하게 만들고 그렇다)
그거 하나면 '너와 저녁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너와 맛있는 거 먹고 싶었어.' 이런 모든 의미를 포함한 말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뒤로 매번 저녁을 먹고 오는 때는 집 앞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 한 잔, 예쁜 쿠키 하나 이렇게 들고 오더라.
정말이지 그 음료 하나가 집밥만 먹은 나에게 무척이나 힐링이었다. 감쪽같이 뾰족했던 마음도 둥글어지는 마법의 음료이다.
똑같이 밥 먹고 늦게 와도 화 안 내는 부인이 신기한지 꼬박꼬박 종류별로 맛있는 음식을 사 왔다.
그게 둘째가 태어난 해쯤이니, 그 뒤로도 쭉 어딘가를 다녀오거나, 들렀다 올 일이 있으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온다.
어떨 때는 예쁜 케이크나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빵, 아이스크림, 저녁 메뉴 하나 더 포장해오기 등등 종류도 참 다양하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다 컸으니 남편의 회식이나 부재가 그렇게 힘들거나 속상하지 않은데도
오늘도 제주도에 출장 다녀온 남편이 손에 들고 온 마음 샌드 하나로
'고생했어'라고 전하는 마음을 나 혼자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