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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쌤 May 27. 2023

그때, 그곳

지금, 이곳

이곳에 2년 전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가 살던 곳은 서울 중에서도 한적한 곳이었다.


바로 앞 한강으로 나가는 길이 있고 뒷산과 공원이 많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


그곳에서 큰 아이가 태어나던 해부터 꼭 10년을 살았다.



그래서 그곳이 서울에 연고가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고향 같은 곳이다.


몇 주 전, 연휴에 무엇을 할까 이야기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그곳을 다시 가보고 싶다고 하더라.


다녔던 어린이집과 학교도 보고 싶고, 

아파트 놀이터도 보고 싶고, 

그 앞에 만들고 있다던 공원이 완성되었는지도 보고 싶다고 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오전 8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집을 나섰다.

주말에 졸릴 법도 한데, 30분 이상 달려 예전 집과 가까워지자 익숙한 동네, 익숙한 간판, 익숙한 길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마치, 몇 년 외국 살다 고국에 돌아온 듯한 반가움이랄까.



집 근처 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완공된 공원을 거닌다.



바뀐 길 사이를 걷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만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익숙하게 떠오른다.



뒷산에 올라 돗자리를 펴고 김밥을 먹으며 캐치볼을 한 기억,

코로나로 답답했을 때

우리 넷 이 산책길을 걸었을 때의 그 공기, 바람, 그리고 했던 이야기.




천천히 공원을 질러 예전 아파트에 도착했다.

10년을 살았던 곳.

그 아파트 뒤편 작은 놀이터에 앉아

아장아장하던 우리 아이의 미끄럼틀 타는 모습이 

어린이집을 다녀오던 길, 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장면


동네 꼬마 친구들과 이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던 이야기.

장소마다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자동 재생된다.




아이 둘은 따릉이를 타고 그때처럼 동네 주변을 돌겠다고 하고

어른 둘은 천천히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커피숍으로 향했다.


'이 집, 한강 자전거 타고 돌아와서 주스 마셨던 곳이잖아'

'이 집 없어졌네, 원래 샌드위치 가게였잖아'

마치 옛 추억 이야기를 하듯 신나서 수다를 떨며 오랜만에 단둘이 카페 데이트를 한다.



그런데 한 두 방울 떨어졌던 빗줄기가 후드득 떨어지고 제법 센 빗소리에

걱정이 되어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딘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며 조금 비가 잦아들면 이곳으로 오겠단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나타난 아이들은 그마저도 즐겁고 재미있단다.



익숙한 그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고, 익숙한 그곳 어딘가에서 쇼핑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치, 그때 그 시간인 것처럼.




10년의 시간 동안 돌이켜 보니 항상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이 먼저 났다.

분명 화나는 일, 스트레스 받는 일, 마음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는 일도 많았을 테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주말 함께 여행 가고 여유롭게 거닐고 웃고, 이야기했던 기억만이 난다.



순간순간 힘들었지만 매 순간 함께 했다는 것,

함께 주말을 보내고 함께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려고 했다는 것.



그 기억이 참 힘이 나게 하더라.



아... 잘 살았구나.

이렇게 웃으며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의 기억도 10년 뒤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해야지...라는 생각.



돌아오며 살며시 남편에게 '우리 참 잘 지냈다'라고 한 마디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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