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pty Mar 05. 2023

지옥 같았던 이틀이란 시간

정말 지옥 같았다. 나는 오래 산 사람도 아니고 이제야 정상적인 서민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고 1년 동안 정말 죽기 살기로 버틴 직장에서 뛰쳐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했다. 


주니어와 시니어 그리고 새로운 임원들이 전부 교체되면서 하나 둘 지인들을 끌어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는 적응을 하지 못했고 시니어들과 바뀐 임원들의 텃새 아닌 텃새로 나는 정말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를 항상 받아왔다. 안 그래도 외부 충격에 약한 사람으로서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정말 죽기 살기로 버텨왔던 1년이란 시간이 다 지나고 나니 당분간 육체적으로는 편해졌겠지라고 생각하고 무리를 한 탓이었을까 감기와 감기몸살이 지독하게도 걸려버렸다. 단순한 콧물, 재채기, 오한이었더라면 평소에도 걸리는 감기니까 약 먹고 자면 되겠지 하고 약을 먹고 잤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 시간 뒤 잠을 너무 못 자겠어서 일어났는데 얼굴을 포함해 온몸에서 열이 방출되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은 너무너무 뜨거웠고 얼굴이 정말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무래도 감기에 걸렸으니 땀을 쭉 빼는 것이 좋겠지라고 옷을 두 겹 세 겹 입고 전기장판을 켜고 잤다. 그랬는데도 증상은 더 나빠졌다. 새벽부터 이른 아침까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해댔고 일어나서도 너무 힘들어서 항생제를 먹고 또 잠을 잤다. 이 과정에서 먹은 약들은 모두 빈속에 때려 부은 약들이라 더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 하루를 꼬박 정말 고생하면서 지냈다. 약을 먹었는데 약 효과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위장이나 간 그 어딘가에서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거나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은 최대한 지양했고 마지막 보루로 편의점에서 파는 액상 판피린을 먹고 새벽에 깨서 또 먹고 잤다. 


그렇게 먹고 나니 아침에 한결 나아졌지만 눈 주변과 관자놀이까지 내가 움직이고 바라보는 방향이 너무나도 어지러웠고 그 멀미 같은 느낌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면 누워있기만 해서 너무나도 답답했다. 이게 무슨 병인지 알고 싶었지만 내가 그동안 겪었던 병과는 차원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오늘 부랴부랴 병원에 다녀왔다.


나는 병원을 가기 전에 이런 증상들은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과를 가자니 머리 쪽과 연관되어 있는데 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부터 신경과를 가자니 신경적인 부분이 맛탱이가 갔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형외과를 가자니 물리적인 곳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신경외과라는 곳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가기 전에 전화를 했더니 다음 주 화요일까지 원장선생님이 휴진이라 진료를 볼 수 없다고 했다. 부랴부랴 다른 곳을 전화했더니 30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도착을 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말을 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아프면 돈이란 돈은 다 깨지는구나 싶었다.


선생님과 20분 정도의 긴 진료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이 나지막이 초장부터 하시던 말씀이 뇌수막염이라는 병이었다. 뇌수막염 증세가 조금 있는 것 같은데 베드에 누워보세요-라는 말씀에 패딩을 부랴부랴 벗고 누워서 이리저리 만져보시고 동공 등을 수차례 봐주셨다. 


다행히 마지막에는 뇌수막염 증세가 있는 것 같았는데 뇌수막염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뇌수막염이라면 걸어올 수 없을 정도였을 거라고 얘기해 주셨다. (택시를 타고 가긴 했지만 거동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멀미나 눈 부근이 너무 멀미가 심했던 것뿐이다. 지금도 눈알을 굴리면 토할 것 같고 약간 VR을 못 보고 못 타는 사람들이 타고난 뒤의 멀미가 나는 그런 느낌이다.)


여차저차해서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고 누워있고 또 잠을 자고 또 하루를 그냥저냥 날려버렸다. 정말 좁은 집에서 세 가족이 모여 살고 내 방이 없어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 지옥 같아서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가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아야겠다 싶었다. 


도저히 이 눈 주변의 메스꺼움과 토할 것 같은 멀미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코로나 자가키트로는 음성이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코로나고 아니고를 떠나서 멀미가 너무 심하다. 머리통이 계속 울리고 누가 잡고 흔드는 느낌이다.


30대를 맞은 이후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이틀이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반증이겠지. 슬프다. 이렇게 하루 이틀 아프다 보면 모아둔 돈이란 돈은 다 쓸 것이고 나도 결국 늙어가겠지.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고 지옥 같다. 그때가 정말 도래한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려고 할까. 정말 고민이다. 걱정이고 불안하고 무섭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안 아픈 게 좋다는 거다. 어렸을 때는 내가 이렇게 나중에 삐걱거리거나 한 번씩 크게 아플 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어렸을 때는 뭘 먹어도 괜찮아 괜찮아 해댔지만 30대가 지나면서 관리를 하지 않았던 부분들에서 하자가 하나씩 나타나는 것 같다. 이래서 다들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잔병치레를 치르지 않고 크게 한 번씩 아픈 게 오히려 더 고통인 것 같다. 나는 이번에 아프면서 느꼈던 것은 다시는 아프지 말아야겠다도 있겠지만 간을 못 쓴다거나 몸의 기능이 분명 한 곳은 무너져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모르겠다. 속 편한 소리는 아니지만 이틀 동안 정말 무서웠다. 나도 아빠처럼 한 번에 죽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작가의 이전글 노인이 된다는 것, 늙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