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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07. 2023

장애인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

당연하게 생각하는 장애인을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과연 장애인도 대우를 해줘야 할까?라는 물음이었다. 대우라는 단어보다는 대접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겠지. 누구보다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겠지. 그게 아니라면 후천적인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던가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난 어려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수준으로 장애인이니까 양보를 하자-라는 마음은 아주 작게나마 있었고 정말 힘들어 보이는 장애인들이 보이면 양보를 한다거나 길을 비킨다거나 그 정도의 배려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삶이 각박해지기 때문인지 나 자신도 신경 쓰기 힘든데 그들까지 어떻게 배려하며 살지?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하게 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오늘 집으로 오는 길에 장애인처럼 보이는 어르신이 나를 손가락으로 부르더니 이런저런 설명을 하다가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줄 수 있겠냐고 하기에 나는 아.. 네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잡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같이 탔다. 그 장애인의 부탁 아닌 부탁은 전신 중 왼쪽을 전부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한 손과 한 발로만 휠체어를 끌거나 밀어야 하는데 앞으로 발을 디디며 나가는 것이 어려우니 뒤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서 내려가줄 수 없겠냐는 부탁이었다. 그 정도의 부탁이야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같이 타고 내려갔다. 장애인 엘리베이터라 문 닫힘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지만 나도 모르게 손에 익은 습관 때문에 닫힘 버튼을 눌렀는데 그걸 보며 장애인 엘리베이터는 그거 안된다고 저기 위에 쓰여있다고 보라고 하면서 갑자기 나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이 장애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신속하게 떠나버렸던 것 같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을 위해서 짧은 시간이건 소비를 한다는 것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큰 모험 같은 일인데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그 감사함을 모르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갔다. 개찰구도 뒤로 밀어줄 수 있겠냐고 하기에 순순히 밀어주었고 개찰구에 카드를 찍기 전에 호출벨을 누르려고 하니 아니, 그걸 왜 누르냐고 나 카드 있다고 반말을 하면서 찍고 너도 여기 찍어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빨리 밀어라며 나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해댔고 거기서부터 마음이 정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층에서도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요청을 했고 나에게 어디로 나가냐는 물음에 저는 어디로 나가도 상관없어요라고 대답을 하니 본인 집 방향의 출구까지 나가자고 무작정 끌고 나갔다. 정말 참다 참다 한계가 와서 여기까지요? 했더니 아 여기 아니고 좀 더 가야 돼하면서 반말을 찍찍.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데도 중간에 가버리면 이도저도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냥 꾹 참고 해 달라는 대로 해주려고 했다. 출구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내리막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해줬다. 그랬더니 일방통행으로 가야 해 오른쪽! 오른쪽! 이러면서 무슨 기사 다루듯 나에게 명령을 했고 저기 떡집 앞까지 가달라고 하며 같은 방향 사람한테 알려달라고 해야겠다는 둥 혼자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글로 녹여내지 못 한 상황이 더 많고 더 많은 말이 오갔지만 구태여 적지는 않겠다. 그냥,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를 많이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장애인이라고 모두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모든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도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이기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도를 아십니까와 신천지와 같은 길 가다 말 거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배려하고 이해하자라는 슬로건 비슷한 것을 보면 정말 하나도 공감도 동감도 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됐겠지 생각한다. 물론 나도 나중에 장애를 겪을 수 있겠지만 내가 장애인이 되더라도 저런 식으로는 늙지도 말고 누군가에게 저런 식으로 부탁하거나 요청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 스트레스 가득한 20분이었다. 내 소중한 시간을 얼굴도 모르는 장애인을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 치가 떨린다. 그냥 무시하고 내 갈 길 갈걸. 나에게 손짓하는 걸 왜 뿌리치지 못해서 그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걸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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