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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18. 2023

남을 돕는다는 게 왜 당연할까?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크립토와 NFT 등에 빠져 살다가 현생에서의 현금 채굴을 하고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NFT와 크립토씬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현생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현생에서 나에게 요청한 곳으로 파견을 나갔던 것뿐이었다. 거기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었고 흔히 말하는 엘리트들만 모아둔 엘리트 집단의 공동체였다. 정확히 그곳을 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은 일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나름 블록체인씬과 크립토 씬에서는 알아주는 인재들이었고 한 다리만 건너면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사람들을 데려와서 더욱더 큰 집단이 되는 과정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정점의 시기에 합류한 것이 아니라 힘든 시기를 얼추 보내고 다시 기반을 잡으려던 때에 아무것도 아닌 역할로 합류를 하게 되어 그들과 아주 밀접한 생활을 했다. 그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도움을 주었다. 내 역할은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내가 쓰이는 것이 꽤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굉장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처럼 공과 사를 뚜렷이 구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던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구글 애드센스와 카카오 애드핏이라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두어 글을 쓰려고 했지만 역시 나는 틀에 박힌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도 틀이 없는 사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부터 티스토리와 브런치를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현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단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는 적성이 더 맞았다고 판단했고 그 과정들을 쓰려던 것이었는데 이게 이렇게까지 범위가 넓어질 줄 몰랐다. 그래도 쓰던 것을 마무리 지어야 하겠기에 글을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부대끼며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보람으로 다가왔다. 보람찬 매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서비스업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고 그들은 나에게 아주 사려 깊은 감사함을 나타냈다. 그리고 정말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것은 나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주려고 했다. 그들이 요청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더라도 유튜브에서 하는 방법을 찾아서라도 해주려고 했고 무수히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 과정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던 그들 입장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나에게 감사하다고 연락을 해오는 것을 보면 난 그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정말 보람찼다. 


여담이지만 나의 엄마는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 봉사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렵지 않게 도움을 주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봉사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그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보고 느낀 것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도 아니 없더라도 나는 어려서부터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엄마의 그런 희생정신이나 남을 돕고 어려워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위였고 그래서 그런지 남을 돕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생각이었다.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동정과 연민에 취약하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나는 즐거웠고 행복했고 보람찼다. 내 도움으로 무언가 해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해결되어 나와 교류를 맺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껍데기의 관계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나를 헤아려주려고 했고 도움을 주려고 했다. 나는 그래서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일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가 해결됐다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나는 그것만으로도 정말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중에라도 시간적인 여유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음식을 대접했고 꼭 나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 저녁 파티를 할 건데 일정 없으면 와서 같이 먹고 놀다가 가라는 식으로 연락을 자주 해줬었다. 그런 연락들마저도 너무 감사했고 귀중했다.


그렇게 7개월을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들은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독립도 이뤄냈고 경제적으로 배고픔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일반인들보다 우위에 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들의 지갑사정까지 뻔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씀씀이나 주변 환경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도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남들에게 베푸는 것이, 말하는 것까지도 그렇게 바뀔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그곳에 정식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견을 갔기 때문에 내가 계약한 회사와 내가 실제로 근무하는 근무지는 서로 달랐다. 양쪽에서 저울질하듯 매일을 불안하게 지내야만 했고 책임을 모두 떠넘기려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계륵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일이 터지면 여기 문제가 아니니 그쪽이랑 상의해 보라고 이야기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자마자 나의 마음속에 있는 균열은 끝도 없이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에게 나 혼자만의 배신을 당했다고 치부해 버리고 나의 마음은 점차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겼는지 나를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정해진 업무의 틀을 벗어난 업무들을 시켜대기 일쑤였다. 아마도 내가 먼저 다가가질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7개월 동안 나름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왔지만 일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 이후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왔다. 글의 주제는 너무나도 다양한 나의 경험일지였다. 그래서 글의 소재가 끊기지 않을 수 있었고 정말 다양한 경험과 실패, 충격과 상처, 배신 등을 당해온 나로서는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즐겁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각한 것이 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남들과 부대끼며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술이라도 마시면서 글을 쓰는 편이 훨씬 더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글로 성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절대 아니고 텍스트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는 행위는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뭔지 확신이 설 때까지는 아마 글을 매일 쓰려고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밖에 없으니.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재주라거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남을 돕다는 생각 하나뿐이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 훨씬 더 가망 없는 미래를 가진 사람도 하루하루 글이라도 쓰면서 살아내는구나, 버텨내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무조건 있겠지만 나중에라도 가능하다면 그들의 매력이나 능력을 개발해 주는 일을 하고 싶다. 당신은 이런 이런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객관적으로 어떤 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가꾼다면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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