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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17. 2023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망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나만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산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면 많았지 내가 가장 불행하거나 못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무언가를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두 손과 두 눈과 두 귀가 멀쩡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만 바라보면 나는 이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더욱더 많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왜냐면 나는 아픈 곳이 없고 남들과 다르게 아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라도 더 할 수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버티지 못한 이유였을까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온몸이 성한데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그리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번갈아가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무슨 일이라도 시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했었겠지만 나는 그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너무나도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회사를 알아보고 회사의 위치를 알아보고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인터뷰를 했는지 같은 것을 다 검색해 보고 면접을 간다. 물론 내가 지원한다고 해서 어떤 회사라도 나에게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면접을 보는 회사는 참 특이했다.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은 청소 업체였는데 내가 청소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지원하자마자 연락이 와서 면접을 봤고 두 번이나 다른 곳에서 면접을 보고 심지어는 상주하게 될 곳의 회사 대표와도 면접 아닌 면접을 보고 면접이 끝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게 맞냐면서 일을 시켰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참 남들에게 잘 휘둘리는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내 몫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하라는 대로만 네네 하면서 따르는 꼴을 보아하니.


최소한 내가 어떤 곳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관련 경력이 없는데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인지 등을 물어보고 내 손으로 챙겼어야 했는데 그런 것을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전구 교체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라고 했다. 정말 간단한 일이라고만 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못하는 게 바보취급받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면접을 두 번, 세 번을 보고 일을 시작했지만 정말 단순히 전구만 교체하는 단순한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은 전구가 나가서 교체를 해야만 했고 그다음은 변기가 막혔고 그다음은 천장에 박힌 전등이 나사가 헐거워져서 그것을 다시 연결을 해서 흔들리지 않게 작업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2인실의 전등이 전부 나가서 들어오지 않는다는 요청에 방문해서 확인을 해보니 이리저리 전선들이 꼬여있었다. 나는 전문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리저리 만지다가 스파크가 튀었는데 그것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너무나도 놀랐고 앞으로는 전선끼리 마주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그러니까, 전구를 교체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고 했지만 결국 그 일보다 더욱더 많은 일을 시켜댔다. 이 이상 다른 일은 하루 날을 잡고 다른 글로 쓰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글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하고 나에게 모욕감을 준 두 회사를 이렇게 매듭짓고 싶지는 않다.


한국 회사들은 왜 사람들을 죽일 듯이 굴리는지 모르겠다. 뽕을 뽑아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한국이라는 나라가 더 염세적이고 짜다. 돈을 주니 이런 일 그리고 이런 일 그리고 이런 일까지 더 할 수 있지?라는 듯한 요청이 너무나도 당연해졌다. 나는 그 꼴이 너무나도 싫다. 죽을 만큼 싫다. 아니, 내가 왜 죽을 만큼 싫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는 게 아니라 죽일 정도로 싫다. 한국 사회는 왜 그러는 걸까. 왜 사람들에게 주어진 10의 양보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걸까. 한국 사회는 10이라고 생각하고 채용을 했지만 결국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면 100이라는 업무를 혹은 그 이상의 업무들을 더 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보상은 없다.


내가 한국 사회를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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