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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28. 2023

죽고 싶은 내 인생

왜 죽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죽고 싶은데 죽고 싶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죽고 싶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겠고 죽고 싶은 이유도 다양하리라. 하지만 둘 다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 확신이 서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죽을 수 있는 이유가 확실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죽고 싶지 않은 이유가 확실하지 않은 이유일수도 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일찍 생을 마감하고 싶었고 그 이유가 단순히 그냥 빨리 죽고 싶어요가 아니라 남들처럼 7-80살이 될 때까지 처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까지 삶을 유지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항상 물음표를 가졌고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오래 산다고 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었으면 더 많이 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외할머니는 아직까지도 정정히 살아계신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40년대에 태어나셔서 한국전쟁까지 겪으셨던 분이라고 기억한다. 물론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아직까지 정정하게 살아계신다. 나는 외할머니를 안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를 방황하던 시기에 나를 무시하거나 봐주지 않았고 설날이나 추석에 찾아갔을 때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에도 나보다 나의 누나를 더 치켜세우기 급급했고 엄마도 딸만 이뻐하고 좋아하지 말고 아들도 관심 좀 가져달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나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싶다. 나한테 좋은 기억도 없고 나에게 잘해준 기억도 없고 매번 억지로 갈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억지'였다.


억지로 맛있는 것을 차려주고 억지로 웃음을 짓고 억지로 농담을 하고 억지로 없는 이야기를 하고 억지로 미래의 이야기를 해댔다. 나는 그 모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이 모든 이야기의 최신 버전은 최소 3-4년 전의 이야기이다. 아빠가 살아있을 때는 같이 갔지만 그 이후로는 찾아본 적이 없다. 할머니도 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도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작년에 한번 할머니 집에 tv를 바꿔드려야겠다며 엄마가 나에게 주문과 설치방법 등을 알려달라고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나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주문을 했고 결제까지 마쳤다. 나에게 할머니란 존재는 정말 싫은 존재 중 하나이다. 그의 딸도 마찬가지이다. 정말 감사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존재이지만 좋아하진 않는다.


어떨 때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존경이라는 감정보다 좋아한다는 말이 오히려 더 와닿을 수도 있지만 나는 모든 이들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무리 잘해줬더라도 내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을 나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준 적이 없다.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그런 상황에서 나는 벼랑 끝에서 버려졌다. 버려진 기분이다. 이 이야기를 그나마 남아있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차별 없이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겠지. 나는 그 꼴이 더 싫다. 누구보다도 더 자식을 차별하면서 다루는 것이 눈에 잘 보이는데 아니라는 답변을 듣는다면 나는 더욱더 무너질 것 같다. 엄마를 사랑해서, 엄마를 존경해서, 엄마를 좋아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자식이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라 나는 어찌할 방법을 모르겠다.


장난식으로 이야기했던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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