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머무르다.

by empty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머무른다는 것은 오래되어 고인다는 것과 다른 것이 뭘까. 아무리 고민을 해보고 머리를 붙들고 생각을 하더라도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머무른다는 것은 그 정도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머무르다'라는 말은 나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주면서도 따듯한 온도의 단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곁에 머무를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가 나에게 머물러 쉴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굉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늘 단어가 긍정적인 뜻으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표현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발전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머무르다는 말의 정의 혹은 온도는 너무나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나는 좋은 의미로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의미로 머물러 있는 것일까. 쉽게 글이 써지지 않고 글을 쓸 타이밍을 매번 놓친다.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글의 소재가 떠올랐을 때마다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환경도, 나의 표현 능력도, 단어 선택 능력도 요즘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삐걱거려 잘 돌아가지 않는 톱니바퀴 같다. 이를테면 나사와 드라이버가 서로 맞지 않아 헛돌아 마모되어 다시는 결합이 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점차 사라지고 희석되어 가는 것만 같다. 나 자신이 보는 나와 외부인이 보는 나의 모습의 차이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해서 현실과 이상을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 그 내실은 건장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누구를 데려와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늘 두 가지의 갈림길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것 같다.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태해져 세상에서 도태되고 말 거야-하는 생각과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생각만큼만 움직이면서 살아도 충분하겠지-라는 두 가지의 생각의 충돌.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서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도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갈 것 같다. 없으면 없는 채로 살아가고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나 자신이 생각할 땐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면 혀를 끌끌 차며 왜 저렇게 한심하게 사냐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나의 이런 생각이 관계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나를 멀리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랬던 적이 많았으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뭐, 쓸쓸하지만 어쩌겠어. 내가 그렇게 태어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겠다는데 누가 나를 뜯어말릴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다. 차디찬 겨울이 지나 따사로운 햇빛이 가득한 봄이 찾아왔다. 따듯한 날씨와 뜨거운 태양과 햇빛은 나에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날들이며 괴로운 기간이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 한 아픔을 겪고 있고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봄이나 여름이 찾아올 때면 '그래, 한철이니까 조금만 참고 최대한 예민해지지 않으려고 해 보자'라고 계속해서 되뇌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하지만 누구도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사라져만 간다. 나는 나의 욕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사람들에게 말도 없이 혼자서 기대하고 실망하는 행위를 너무나도 많이 했었고 겪었기 때문에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도, 그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머무르다 못해 멈추어있다.


누구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려 한 적 없다. 누구에게도 알아달라고 이야기 한 적 없다. 나의 혼자만의 착각이고 혼자만의 바람이었다.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혼자 판단한 주제에 실망하게 되는 상황을 실망한다. 서운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서운한 상황에 대해 또다시 실망하고 혼자 마음을 닫는다. 이런 감정들이 항상 반복되다 보니 나는 정말 이 세상과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자책을 한다. 그 모든 원인이 나 자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남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다른 것 같다. 화려하고 전문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나 자신이 점점 작아져서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모든 날이 그렇겠지만 나는 오늘 잠을 못 잤다. 심지어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서 강박으로 핸드폰 시계를 쳐다본다. 새벽 두 시, 세 시 사십 분, 다섯 시 이십 오분, 일곱 시 사 분, 여덟 시. 요즘 내가 문제가 있긴 한가보다. 제대로 잠을 자는 것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강박으로 인해 깨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문제가 점점 켜켜이 쌓여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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