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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Oct 30. 2023

나는 왜 이렇게까지 됐나

나는 언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한창 꾸미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옷을 정기적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씩 동묘시장에 가서 구제 옷을 한 무더기 사 오곤 했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인 옷들을 고르지만 늘 사 오면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버려야 하는 옷이 더 많았을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그 상황에선 돈 날렸다며 한탄하는 게 전부였겠지만 코트 한 벌에 천 원 이천 원 하는 돈이었으니까 일반 옷 가게를 비교하자면 비교 대상이 되질 못했다.


싼 맛에 입는다. 딱 그 말이었다.


그렇게 옷도 빨빨거리면서 잘 사러 돌아다녔고 선크림까지 바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세서리도 하고 머리도 만지고 최대한 외적인 모습을 꾸미려고 애썼다. 반지부터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계속해서 걸치고 다녔고 그게 나는 너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어느샌가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부터는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을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일의 원흉을 아빠의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하고 죄스럽긴 하지만 나에게 폭풍 같은 가장 큰 일이라고 한다면 그 일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빠를 탓하거나 못 키웠다는 그런 말은 못 하겠다. 아빠는 분명 힘든 시기에 한 가족을 책임졌고 병을 방치해서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뿐이지, 그리고 나와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남들에게 잘했고 남들이 인정했으니 뭐 그러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 내 삶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아빠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부터가 참 난관이라고 생각을 했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아버지와 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 오래까지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작은 서운함은 있다. 물론 아빠가 더 살아있었더라도 우리 가족의 관계나 화목성은 그렇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만 지금보다는 조금 가벼워질 수 있었겠지. 그뿐이었을 거다. 다른 건 바뀌는 게 없을 거였다.


그렇게 나는 그 사고의 전후로 많은 것을 바꾸었고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돈을 모으지 못하고 있고 경제적인 여유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더 심각해져만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고 술도 아직까지도 먹고 있다.


엄마를 비롯한 사람들은 한 마디씩 한다.


아빠가 술을 많이 마셔서 간경화로 돌아가셨는데 너까지 그렇게 가고 싶냐고. 오히려 그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 아빠의 생사를 가장 가까이서 본 나의 생각은 그렇게 가는 것도 꽤 멋진 삶인 것 같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즐길 것들을 즐길 만치 다 즐기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다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나에게는 크게 나쁘지 않다고만 생각된다.


물론 남겨진 가족들을 등지고 먼저 죽는다는 것은 불효 중 가장 큰 불효이긴 하겠지만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십 수년 이상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죽어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렇게나 바뀐 삶이 좋다고 말할 수도,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막상 같이 먹을 음식과 안주가 없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덧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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