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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Dec 17. 2023

이번 생은 돈을 모으지 않기로 했다.

물론 땡전 한 푼 없이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처럼 놀고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항상 어려서부터 돈을 모은다고 모아봤지만 절대로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는 일이 항상 반복되기만 했다. 돈을 모으면 어떻게 해서든, 어떤 이유로든 돈이 계속해서 지출이 되었으니 돈을 모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올해 내 통장에 겨우 천만 원이라는 돈을 모아서 너무나도 기뻤고 대출, 국세 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본가에서 가족들이랑 같이 살 때는 편의점에서 소주 몇 병과 콜라, 과자 등 주전부리를 사는 돈이 왜 그렇게도 아까웠는지 모르겠다.


독립을 하니 이 정도야 뭐- 하면서 돈을 써댄다. 무턱대고 몇 십만 원씩 턱턱 사치를 부리면서 살고 있지는 않다. 최소한으로 돈을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아끼고 쓰는데도 무언가 여유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마음이 항상 태평양처럼 넓지만은 않지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을 때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돈을 쓸만한 주변인들이 없었고 항상 나를 절벽으로 밀어붙이는 존재들밖에 없었기에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동네 친구들이 그나마 좀 있었던 시절에는 친구들이 매일 밤마다 술 먹자고 불러냈다. 매번 만나는 멤버들마다 술을 2-3차까지 마시고 새벽이 되어서는 노래방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매번 그런 일상이었다. 그렇게 노는 것이 물론 그때 당시에는 무척 좋았고 행복했지만 쓸데없이 돈을 턱턱 지출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친구들 몰래 혼자 마음을 삭히고 있었다.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그 친구들처럼 방탕하게 유흥에 돈을 흥청망청 쓰는 모습을 보니 왜인지 싫어져서였을까 어떤 술집을 가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하고 무슨 술 게임을 하더라도 재미가 없었다. 억지로 비위를 맞추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돈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나 혼자 쓸 돈도 벅찬데 얘네랑 놀면서 돈을 만원 이만 원 쓰는 것도 아니고 4-5만 원씩 매번 내야 한다는 게 내심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이후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겪는 감정이 있다. 나는 생각보다 뭐든지 오래 걸리는 사람이구나 라는 감정이다. 사람을 만나서 마음을 여는데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고 상대방과 충분한 대화를 통해 마음이 놓이고 부담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가 않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커피 사다 주는 것도 최근에는 아깝지 않아 졌다.


이상하다. 이렇게까지 바뀔 사람이 아닌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해도 돈이 아직까지는 먹고살만한 정도라는 생각일까? 사실 남들처럼 여유 있다는 것이 몇 천만 원, 몇 억이 있어서 띵가띵가 놀아도 되는 수준은 아니다. 고작 몇 백만 원 여유가 있는 것일 뿐이고 나는 다른 큰 지출이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번 생은 돈을 모으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이렇게 막장으로 살았는데 통장에 천만 원 모아봤으면 됐지-라는 생각이면 충분할 것 같다. 물론 내 몸이 지금 성치 않은 상황이라 충치 치료도 해야 하고 허리 디스크 검사도 받아봐야 하고 건강검진도 받아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름 아까운 돈이 숭숭 나가고 나면 그때는 또 돈이 없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튼 이번 생은 돈을 모으지 않기로 했다. 몇 천만 원씩 모아서 이자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냥 지금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는 삶이 좋은 것 같다. 아니 이미 이렇게 물들여진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 자신도 돈이 없어서 급박한 상황도 아니기에 여러모로 좋지 아니한가.


이러다가 돈이 다 없어져봐야 정신 차리려나.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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