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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Dec 16. 2023

내가 그나마 살만한 이유

제목 그대로 나는 그나마 살만하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막 죽을 것처럼 사채업차가 쫓아온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장례를 끝마치고 기존에 살고 있던 집을 가장 비쌀 때 팔고 좁고 옛날식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남은 가족은 셋, 이사를 간 새로운 집은 방이 두 개뿐이었다.


나는 그 시기에 아빠를 잃고 방황을 하고 있었기에 집에 잘 들어가질 않았다. 물론 그때 일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퇴근 후에 바로 집에 와서 짐 정리를 하지 않고 밖에서 술을 더 마시고 온다거나 하는 이유로 짐 정리가 끝도 없었다. 아니 이런 짐들을 정리하는 게 과연 끝이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게 했다. 그만큼 그때 당시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었을 때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방황을 해댔다. 남은 가족 모두가.


당연히 큰 방은 엄마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남은 방은 내가 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만의 공간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방 청소를 꾸역꾸역 끝내고 내 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전 집에서는 내 방에 미니 술장고가 있었다. 미니 냉장고에 음료수와 술만 그득그득 넣어두는 냉장고였는데 이사를 하면서 버리는 탓에 새벽에 출출하거나 술이 떨어지면 늘 새벽에 편의점을 갔어야만 했다. 그렇게 컴퓨터와 데스크, 선반들과 옷 정리를 다 끝내고 힘들고 지쳐서 방바닥에서 과자와 소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렇게 문득 불을 다 끄고 무드등만 하나 켜두고 내 방을 보니 너무나도 깔끔했고 좋았다.


우리가 이 집을 사기로 결정한 것은 기존 살던 집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도 했고 엄마가 동네를 떠나는 것이 무섭다고 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프라와 지인들이 이 동네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는 0순위는 이 동네에서 그나마 괜찮은 가격에 리모델링이 된 집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부동산에 의뢰를 하고 집을 보러 다녔을 때, 나는 솔직히 모든 집을 다 같이 보러 다니지는 못했다. 엄마와 누나가 계속해서 집을 보러 다니던 와중에 나한테도 한번 다녀오라고 했다. 이 집은 내 기억으로 24평인데 우리에게 집을 넘겨준 사람들이 신혼부부에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는데 아이들이 커가니 다른 큰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래서 집을 방문해서 꼼꼼히 살펴봤는데 이전 우리 집보다는 훨씬 좋았다. 핑크색 몰딩도 없었고 인테리어를 해치는 것도 없었다. 보자마자 이 집 너무 좋다고 감탄을 했고 베란다 너머로는 우리 아파트가 고도가 다른 건물들에 비해 솟아있는 편이라 베란다 앞은 뻥 뚫려있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한 편으로는 새벽에 베란다에 테이블이나 자리를 만들어서 야경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마저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 혼자 살 때의 행복회로였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생존에 포커스를 맞추었기 때문에 빨래니 짐이니 모든 것을 곳간에다 짐을 쌓아두는 것처럼 했다. 이전 살던 사람들은 인테리어와 가구, 전자제품 등을 한 가지로 통일시켜서 매칭을 했기 때문에 참 좋아 보였는데 우리 집에서 옛날부터 써오던 갈색 수납함이나 원목 테이블, 원목 옷장 등을 가져오는 바람에 참 언밸런스한 집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집을 계약하고 아빠의 흔적을 모두 지우면서 아빠가 내 명의를 빌려 사용하면서 나온 국세를 그제야 해결할 수 있었다. 한 5천만 원 정도 되는 세금이었는데 어느새부턴가 해결해주지 않았고 아빠도 이렇게 빨리 죽음과 인사할 줄 몰랐을 테니 해결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을 팔고 남은 돈으로 못된 친척들이 우리 아빠를 모시면서 든 돈을 계산해서 4천만 원가량 되는 돈을 달라고 해왔다. 우리가 모시는데 얼마나 힘들었냐는 둥 이야기를 꺼내면서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는 그제야 마이너스가 아닌 제로가 될 수 있었다.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나의 어리숙한 행동으로 제3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자율이 25%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것도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국세까지 해결을 했다 보니 나에게는 지금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는 빚도 재산이라고 하지만 나는 빚을 내거나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 누구보다도 싫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좋다. 적당히 벌어서 적당히 나가는 월세, 통신비, 교통비 정도만 나가는 삶이 꽤나 좋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지출이 없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한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삶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년부터는 아빠가 들어둔 실비보험 보험료를 매달 8만 원 정도 납입을 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조금 부담스러워질 수 있어서 고민이 많다.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아빠를 정말 싫어했는데 아빠는 나와 가족들에게 해준 것들이 많았구나 싶다. 물론 엄마에게 생활비를 단 한 번도 올려주지 않고 남편이 아닌 남의 편으로 살아온 것을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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