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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Dec 16. 2023

천만 원이 큰돈이긴 했지. 암.

천만 원을 모았던 것이 엊그제였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그것을 저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본가에서 살 때는 돈을 이상하게 모으지 못했다. 이상하게 교통비도 많이 나갔고 돈이 많이 나가서 많이 저축을 하더라도 돈을 빼서 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난 뒤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쓰는 돈을 아끼면 되었기 때문이다. 월세를 약 65만 원을 낸 뒤, 먹는 것도 최소한으로 줄였고 생활비나 기타 나가는 비용을 극한으로 아꼈었다. 빨래도 무조건 코인 세탁소를 가질 않았고 집에서만 돌렸었다. 물론 매트리스 커버가 더러워졌을 때 한 번씩 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큰 지출은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늘 7-8시가 되었다. 그 시간에 집에 오는 길에 순대나 떡볶이, 튀김이나 과일과 술을 두어 병 사 와서 먹고 잠에 들었었다. 마지막으로 65만 원을 낸 월세방은 해가 절대 들어오지 않는 방이었고 창문을 열면 1m도 절대 되지 않는 거리 안에 옆 원룸 건물이 자리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해가 들지를 않았다. 오히려 화장실 쪽으로 해가 들어오는 건물이었지만 화장실에 창문이 있을 리 없었고 그렇게 몇 개월을 살게 되었었다.


매일 저녁은 비빔면이나 짜장라면을 먹었고 라면이 질리는 날이면 분식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순대를 사서 저녁으로 때우곤 했다. 물론 햇반이나 밥도 먹긴 했지만 하루하루 하루살이처럼 때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사 먹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돈을 아끼고는 모든 음식에 질려져서 수박 한 통을 사서 일주일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밥이자 술안주로 최고였기 때문에.


여름을 그렇게 지내고 가을 즈음에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는 이유는 그 건물은 알게 모르게 방 쪼개기를 해둔 건물이었다. 아직까지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한 층에 7-8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양쪽에서 문을 열면 한쪽은 무조건 열지 못하는 상황까지 펼쳐지기도 했다. 물론 출퇴근시간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쉬는 날에 일이 터져버렸다.


여자친구를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렇게 크게 떠들지도 않았고 tv를 틀어두고 술김에 약간의 텐션이 올라온 상태로 대화를 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났을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가서 문을 열고 봤더니 경찰 두 분이 문 앞에 계셨다. (이 내용은 브런치에 이미 썼을 수도 있다.)


옆 집에서 소음 문제로 신고를 해서 출동을 했으니 조용해달라는 말이었다. 그 신고를 받기 전에도 매트리스에 누워있으면 옆집에서 보는 tv소리나 화장실 소리, 심지어는 핸드폰으로 보는 유튜브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방 쪼개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내가 시끄러웠나? 아니면 너무 가까이 붙어있어서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도 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배려심이 깊은 나의 착각이었고 그 정도로 소리가 잘 들리는 건물이면 방 쪼개기가 의심된다는 수많은 글들을 보고 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햇빛도 쬐지 못한 나의 수개월 원룸 생활은 끝이 나버렸다. 그 이후로 독립을 하고 원룸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회의가 너무나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 정도로 소음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건물을 이상하게 짓거나 건물을 쪼개기 한 건물주의 문제겠구나 하면서 탓을 돌리긴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에서는 강아지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 물론 오피스텔이라 관리비와 월세가 터무니없이 비싸기도 하고 강아지의 짖음 때문에 옆 집에서 벽을 쾅쾅 칠 때도 있지만 그때를 기억하면 훨씬 나은 생활이기도 하다.


이 집의 보증금이 천만 원은 아니지만 천만 원을 모아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집을 빼지 않는 이상 돈을 벌어서 플러스가 된다는 가정 하에 여행에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생각을 주입시킨 것은 몇 번이고 다녀왔던 일본 여행의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집 보증금을 제외하면 300만 원의 여유가 있으니 한 번쯤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싶다. 그 돈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나에게는 생활비조차 남아있지 않겠지만 그것마저도 아끼는 삶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인생에서 또 없을 여유자금으로의 여행을 떠날 것인가의 고민 중에 있다. 돈을 아낀다고 해서 내가 다른 일을 한다거나 창업을 한다거나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달에 5-600만 원씩 버는 것도 아니기에 고민의 폭은 점점 좁아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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