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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Dec 20. 2023

언제까지나 약을 먹고살 순 없잖아

나는 지금 술을 먹으면서 자꾸 다른 약을 먹는다. 매일 먹는 간에 도움을 주는 약 말고는 한 번씩 약을 같이 섞어서 먹기는 하는데 그게 굉장히 간에 좋지 않다고 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다음 날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날이면 감기약을 먹거나 일본에서 사 온 eve라는 두통약을 먹곤 한다.


이상하리만큼 그 두 가지의 약을 먹으면 다음 날 숙취가 없다. 많이 자는 것도 아닌데도 이상하게 숙취도 없고 잠을 굉장히 잘 잔 느낌이 든다. 인터넷을 하다가 언젠가 한번 본 것 같기도 한데 감기약에 들어있는 성분이랑 술이랑 굉장히 상반되는 효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이 먹으면 정말 좋지 않고 간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글을 본 것 같다.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그저 타이레놀과 같은 두통약과 같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수준이었지만 감기약이라면 그 효능이 더 좋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매번 숙취 해소제를 사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정도면 술을 끊는 게 맞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친구이자 취미생활이다. 술을 마시면서 유튜브 영상을 느지막이 틀어두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그게 나의 유일한 낙이다. 가끔가다 눈을 뜨자마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고 술이 나의 앞길을 막은 적도 많다. 술을 끊지 못해서, 기분 좋은 날이니 술을 먹자! 하는 날이면 항상 행복함과 후회감이 공존하기도 한다.


내가 술과 감기약을 같이 먹은 지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8-9년 정도 된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을 구할 수 없던 시기도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했을 때 타이레놀과 같은 라인인 타이레놀 콜드라는 감기약을 찾아볼 수가 없는 지경까지 갔었다. 그때 코로나에 걸리면 종합 감기약이 좋다는 둥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먹지 못한 날은 다른 감기약을 먹거나 숙취 해소제로 버티거나 했다. 참 무식한 행동이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 검사를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받는다. 피검사를 받으면서 간 기능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은 종종 하고 있지만 수치는 아직까지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에 2-3개월 전에 받은 피검사 결과는 수치가 약간 올라갔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충분히 정상 범위로 내려갈 수 있는 수치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술을 끊을 생각이 없다. 참 등신 같다. 아빠가 간경화로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겁도 없이 깝죽거리고 있는 것만 같다.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보고 있으면 어떻게 생각할지조차 모르겠다. 그만 먹고 건강 관리 좀 해라라고 말을 할지 아니면 그 시간이라도 즐겨라고 이야기를 할지. 물론 후자였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원코인 인생이기 때문에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약을 먹지 않고 새벽 느지막한 시간까지 술을 마시면 해가 뜰 때까지 마신다.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필름이 뚝 끊겨버린다. 그리고 잠에 들고 정말 느지막이 오후 3-4시에 잠에서 깨어난다. 물론 나의 지금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맨바닥에서 얇은 이불만 깔고 자는 나로서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기도 하다. 워낙 잠을 못 자는 편이라서 이렇게 자나 저렇게 자나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잠자리는 크게 소용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바닥에서 잔 후유증이 하나둘씩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허리를 기준으로 양쪽 옆구리와 팔, 어깨 등이 정말 부서질 듯이 아프고 삐걱거리는 느낌이다. 난 정말 이상하게 이렇게 삐걱거리는 순간에도 그 아픔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간이 굳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몸이 찌뿌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 언제 죽을까 정말 궁금해진다. 이렇게 하루살이처럼 살다가 죽어버리면 나 자신은 편하겠지만 나를 먼저 떠나보내면 아빠를 포함한 나의 가족은 얼마나 슬퍼할까. 물론 나는 친구도 없고 주변 지인도 없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울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 그놈 잘 죽었다! 그러게 술 좀 끊지!"라고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불쌍한 놈"이라고 혀를 차며 나를 동정할 것인가.


모르겠다. 술은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술을 대체할 것이 없다. 일 년 내내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미 중독자의 길을 걷고 있고 간 상태도 점점 악화되는 걸 수도 있다. 마치 게임의 기간제 아이템처럼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그런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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