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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Jan 07. 2024

부모를 잘 만난다는 것은 축복

태어난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다. 이제껏 살아와서가 아니라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확률적으로 대단한 행위이고 그 확률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 또한 엄청난 일이다. 그리고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부모를 잘 만난다는 것은 축복에 축복을 더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부모를 잘 만난다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로또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부모를 만나느냐, 그렇지 못한 부모를 만나느냐가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의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자란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의 등살 때문에 집에서 뛰면 3분 만에 갈 수 있는 사립학교를 유치원부터 다녔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까지 모두 한 캠퍼스 안에 있는 학교에서 모두 졸업을 했고 그 덕분에 그 학교 재단에 쏟은 돈이 몇 억이 훌쩍 넘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여행으로 일본으로 일주일가량 여행을 다녀왔으니 다른 말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그리고 초등학생 때 급식비를 내지 않았다고 다른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급식비가 입금되지 않았다고 망신을 주었던 적도 많았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안은 여유롭게 사립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바람에 불었는지 집과 가장 가까운 학교를 보냈다. 유치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초중고를 같은 사립학교로 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몇 억은 썼을 것 같기도 하다. 사립의 특성상 가방, 교복, 모자 등 모든 것을 정의하기 바빴고 그것을 무조건 따라야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학교를 다니면서 가방이나 메이커 옷을 사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부모님이 사다주시는 옷을 입고 이너웨어만 계속해서 바꿔 입어댔다. 결국 남들에게 보이는 교복이란 것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립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나는 몇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고를 수 있는 진로에서 예체능을 부모님 몰래 적어냈고 그렇게 2년을 가족들 몰래 예체능 수업을 했고 수업 때마다 음악을 부르는 보컬 수업을 해왔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예체능 양아치(?)들에게 무수히 많은 피해를 봤고 당하기도 많이 당했다. 그 이후로는 아, 음악이나 체육을 하는 아이들이 성격이나 가진 정체성이 참 다채롭구나라고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 생각은 30대가 지난 지금에서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부모를 잘 만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사랑이냐 돈이냐의 문제인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사랑보단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모들이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이 없으면 돈보단 같이 있는 시간이나 사랑, 애정 등으로 아이를 보살피는 것 같다. 나는 후자임에도 불구하고 딱히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느끼지는 못한다. 물론 내가 느끼는 감정과 부모의 감정은 다를 수 있지만 이번 생은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의견보다는 내 의견이 조금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돈이 많건 적건 좋은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축복인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내 이름대로 천천히 돌아가고 배움이 느린 사람이지만 그게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 느리게 배워서 주변인들과 격차는 많이 벌어졌고 지금도 내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다.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불행은 찾아오는 것 같다.


나에게는 아직 불행은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금방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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