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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Feb 22. 2024

수십 개월 만에 술을 안 마셨다.

하루뿐이지만

언제부터 술을 계속해서 마셨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요즘 블랙아웃이 온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대 초반 대체역 복무를 보건소에서 할 때만 하더라도 내가 치매가 있나?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때 일하던 보건소 입구 왼쪽에는 치매 검사를 무료로 해준다는 배너가 달려있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고 담당자님에게 문의를 했다. 요즘 깜빡하는 게 심해지고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치매인 것 같아서 검사를 해보려고 한다-라고.


그렇게 말했더니 너무나도 당황했는지 이 검사는 65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라서 20대인 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검사만 하는 거면 같은 보건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니 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굉장히 단호하게 안된다고 65세가 넘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내가 치매인가? 치매일까?라는 고민을 정말 수도 없이 해왔지만 타고난 예민함과 감각이라는 걸 무시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기억나는 게 이상할 정도의 오래전 사건들은 불 보듯 뻔하게 기억을 하면서 당장 어제, 저번주에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흐름은 대충 파악할 수는 있지만 세세한 것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꿈을 현실적으로 꾼다는 것에 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너무 현실적인 꿈을 꾸어서 일어나자마자 파김치를 찾기 시작했다. 왜 파김치를 찾았냐면 꿈에서 우리 가족이 파김치를 준다는 말을 듣고 파김치를 들고 집까지 왔던 장면을 꿈에서 꾸었기 때문인데 너무나도 생생하게 꿈을 꾼 탓에 파김치가 냉장고에 넣어뒀나? 하는 생각으로 냉장고를 열어서 파김치를 찾아보지만 파김치라는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요즘 이런 꿈을 꽤 자주 꾼다. 꿈에서 했던 행동들, 말들이 꿈에서 깨어나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분이다. 꿈에서 듣고 본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내가 왜 그런 꿈을 꿨지? 내가 꿈에서 무슨 말과 행동을 했기에 현실과 꿈을 구분 못하는 걸까? 저번에 글을 한번 쓰긴 했지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자다가 갑자기 덜컥 일어나 버렸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살고 있던 원룸 창문이 나있는 곳에 더 큰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내 창문으로는 햇빛이 정말 들어오질 않았다. 방바닥에서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우중충한 느낌의 아주 미세한 빛만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고 건물 밖으로 나서면 아주 밝은 날씨였던 때가 많았었다.


그렇게 덜컥 일어나서 씻고 수염을 밀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다 입고 외투만 입으면 됐었는데 무언가 수상해서 핸드폰을 켜보니 새벽 3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정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생활패턴이 엉켜서 새벽 3시에 일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너무나도 조급했고 다급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몇 시인지 볼 새도 없이 부랴부랴 압박감으로 출근준비를 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렇게 꿈과 현실의 중간에서 계속해서 어지러운 삶을 살고 있는데 어제는 수십 개월 만에 술을 마시지 않고 잠에 들었다. 집돌이가 된 느낌을 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집에만 있다. 어제도 다른 날과 별 것 없이 컴퓨터를 틀어놓고 유튜브 라이브로 24시간 내내 방송을 해주는 예능을 틀어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는데 너무 졸렸다. 눈이 감기고 책상에 앉아서 꾸뻑꾸뻑 졸고 있을 정도였다.


사실 피곤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요즘 무기력해서 그런가 계속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도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저 배터리를 on/off 하는 것과 같은 기능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계속해서 졸다가 바닥에 누워서 30분만 자다가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대로 잠에 들어 버렸다.


생각보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지만 결국 술을 마시지 않으면 무언가 인생의 낙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중독처럼 매일 마시는 건 좋지 않은 거구나라고 아주 약간은 느낀 것 같다. 일주일에 평일은 마시지 않고 주말만 몰아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자제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언제부터 술을 마셔댔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2년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간중간 하루씩 쉬는 날은 있었겠지만 날 잡고 2-3일 넘게 마시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고작 하루 마시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하루만이라도 마시지 않은 게 꽤나 뿌듯하다. 내 의지로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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