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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25. 2024

건강검진 결과는 최악이었다.

간 수치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간 수치는 고사하고 고지혈증과 고혈압까지 세트로 묶여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단순히 아빠가 간경화로 돌아가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한테도 간 문제는 있겠지 하면서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아빠는 엄마랑 연애할 때는 술을 마시지 않고 결혼을 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빠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길게는 30년 짧게는 20년이니 그만큼 매일 마셨으면 아빠가 간경화로 돌아가시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라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 중에서는 아빠와 나만 술을 마시고 엄마는 한 잔도 못 마시고 누나는 맥주 정도는 가끔 마시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이건 우리 집 한정이고 아빠 쪽 친척들을 보면 거진 술을 다 마시고 즐겨마시고 많이 마시는 편이다. 엄마 쪽 친척은 그렇게 마시는 편도 아니고 다 같이 모일 때만 마시는 것만 같았다. 사실 친척들이랑 연을 끊은 지가 꽤 되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아직까지도 살아는 있는지조차 모른다.


내 검진 결과는 정확히 11일 되던 날 아침에 연락이 와서 내원해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연락이었다. 그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병원에 갔다. 11일 전에 갔을 때 만났던 불 친절한 간호사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없었다. 그리고 접수를 하고 혈압을 재보라는 말에 혈압을 쟀는데 고혈압 1기-2기 사이의 수치가 나왔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도 혈압을 두 번씩이나 쟀는데 첫 고혈압 수치가 높게 나와서 걱정스럽긴 했지만 오늘 또 고혈압 수치라니 그때부터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젊다고 영양제나 운동이나 건강관리를 안 하기도 했지만 막상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하실지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은 굉장히 컸고 막막했다. 나 혼자서 그런 이야기를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그런 병들이 생겨난다면 나는 과연 술을 단번에 끊고 예전보다 열심히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서 오만가지 생각과 잡념이 가득했다.


의사 선생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저번에 검사하셨던 수치나 몸에 이상이 있다고 대번에 말씀하셨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으로 들렸던 것은 고혈압과 고지혈증, 간 수치가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간 쪽의 문제, 그리고 번번이 혈압 수치가 높아서 조금은 걱정했던 고혈압까지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준비는 됐지만 고지혈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이 굉장히 낯설었다. 부모님 세대에 의해 한 두 번씩 흘려듣긴 했었지만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저 세 가지의 병이 함께 맞물려있어서 더 큰 병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간 수치가 높아진 것이 요즘 부쩍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인지 지방간이 있는 건지도 자세히 초음파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저번에 왔을 때 검사 비용을 확인해 보니 15-20만 원은 너끈히 넘는 금액대여서 그냥 포기하고 이러고 살다 죽자- 생각이었지만 초음파와 간 기능 검사에 대한 비용은 그리 비싸지 않고 두 가지 검사를 했을 때 5만 원 안쪽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전날 8시간 이상 공복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고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오자마자 대기 순서대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술을 끊을 수 있는 병원도 알아봐야 하고 요즘 부쩍 맨바닥에서만 잤더니 허리가 예전보다 더 아프고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간장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고 간수치가 내려갔는지, 고지혈증은 더 진행된 것은 아닌지 꾸준히 병원을 방문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10대와 20대를 안하무인으로 살아오다 보니 이제 그렇게 관리하지 못한 지난날의 후회들을 현재의 내가 고스란히 받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눈앞이 컴컴하다.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는지, 그나마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내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 그런 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냥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돈을 벌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는 편이 낫겠다.


병원에 가는 길에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병원 검사결과를 받아 들고 나온 순간 비는 조금 더 굵어졌고 더 많이 쏟아졌다. 우산을 일부러 들고 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맞는 비와 청천벽력 같은 병명 소식은 참 무섭고도 무거운 일이었구나 싶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브런치 글이 한 달 넘게 올라오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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