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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Mar 18. 2024

강아지를 키우는 건 아빠가 된다는 것

15년 가까이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는 내 인생에서 강아지는 없을 줄 알았다. 물론 내 의지로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키우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 15-20년 전의 그 아이는 아니지만 어떤 강아지라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어떤 아이를 키우던 상관없이 그것은 매우 책임감이 큰 일이고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자식을 키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것은 식당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음식을 먹지 못하는 환경도 환경이고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과 환경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아이는 그저 사랑스럽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런 모습을 보고 싫어하는 사람들부터 발로 툭툭 차는 시늉을 하면서 짜증 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부분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상처도 받고 스트레스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요즘 가장 내가 신경이 곤두서있는 것은 키우는 아이가 할 일 없이 하루종일 잠만 자고 있다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 안쓰럽다. 내 생활을 조금 줄여서라도 아이 산책을 한번 더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하루종일 켄넬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놀았으면 좋겠어서 다양한 장난감도 사주고 간식이나 사료를 넣고 굴리면서 먹는 장난감도 사주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잘 가지고 놀다가 휙 돌아서는 순간 그 장난감은 찬밥신세가 되어버린다.


어떻게든 집에서 잠만 자는 걸 막아보려고 간식도 주고 강아지용 치약도 줘보지만 전력을 다해 놀아주지 않는 이상 계속 하루종일 잠만 잔다. 강아지는 평균적으로 하루 10시간 혹은 그 이상을 자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막상 그렇게 오래 자는 모습을 보면 참 미안해진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 감정에 점점 몰입되는 순간, 나는 아빠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이 강하게 받는다. 어딜 가도 이 아이가 중요하고 이 아이가 힘들어하고 무서워하면 안아주고 달래고 불만이 있는 것 같으면 관찰해서 불편한 것들을 해결해주려고 하고 옷도 사입히고 간식도 사 먹이고 필요한 장난감이나 집기들을 사주는 걸 보면 이건 나중에 애 아빠가 되는 것의 리허설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켄넬 안에서 잠을 잘 자고 있지만 저 아이의 속마음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지금 자고 있는 저 행위가 만족스러운지 아니면 이 좁은 원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잠만 자는 것은 아닌지, 체념하고 잠만 자는 행위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렇게밖에 못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마다 참 미안하고 나 자신이 속상하고 안쓰럽다.


강아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수면시간이라지만 무슨 의사표현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아프면 아프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잠 자기 싫고 나가서 산책하고 싶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평생 그렇게 옆에서 웃으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마. 똥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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