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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pty Apr 03. 2024

나에게 제일 고통스러운 여름

춥다 못해 얼어 죽을 뻔했던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각종 뉴스에서 벚꽃은 개화 시기를 놓쳐 벚꽃 축제나 꽃을 제때 볼 수 없다고 해서 조금은 속상한 마음이 있지만 나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무서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해가 쨍해지기 시작하고 이제 패딩을 더 이상 입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였을지도 모르겠다. 목덜미부터 귀, 손등 온몸이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두드러기는 시도 때도 없이 간지럽기 때문에 정신없이 긁다가는 피가 그득한 장면을 볼 수도 있다.


손등에는 작고 동그란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보기 좋지 않아서 손등이 가장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그다음으로는 햇빛을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목 뒷덜미가 가장 심하다. 스카프나 목을 가릴 수 있는 것을 하고 다녀야 하는데 어떤 걸 사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그걸 하고 다닌다고 해서 자외선이 완벽히 차단되어서 내 햇빛 알레르기를 100% 막아줄 수 있는 기능성 제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돌아오는 여름마다 나는 항상 괴로웠다. 해가 쨍쨍한 대낮에 어딘가를 나가서 놀거나 일을 할 때면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고 지옥 같았다. 해가 지나면서 매번 그 고통의 수치는 높아져만 간다. 5년 전보다 4년 전이, 3년 전보다 올해가 더 고통스럽고 몸에 퍼지는 두드러기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햇빛 알레르기를 고치려고 부단히 애를 쓰셨는데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근본적인 완치를 위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수차례 수십 차례 병원을 오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최대한 햇빛을 피하고 그늘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좋다는 답변뿐이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 말이 통할 수 있었겠지만 군대를 다녀온 이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이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답변이었다. 햇빛을 피해서 그늘에서만 일할 수 있는 일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되면 주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말인데 그 말도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야간 일만 해야 하는 인생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야간 일을 할 수 있는 스펙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운전면허도 작년 6월에 땄고 그 이후로 도로에서 운전을 해 본 적이 없다거니와 누군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120-130k/m로 달리는 그 속도를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서 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도, 옆에서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교통사고가 날 것만 같은 그런 모든 느낌 때문에 그런지 나는 운전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무섭다. 공포스럽다.


4월부터 시작해서 해가 쨍한 몇 개월 동안은 무수히 많은 스트레스와 걱정, 불만과 그 모든 것으로 인해 나 자신의 성격이 예민해지고 까탈스러워지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더 스트레스다. 햇빛 알레르기가 무슨 누구나 겪는 마음의 병이고 완치가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말하는 것들도 너무 화가 난다. 햇빛 알레르기가 심각하게 있는 사람한테 대낮에 어딘가를 놀러 가자고 하는 것도 나에게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격이고 화가 난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그런 식의 말이 너무나도 싫다. 적어도 해가 떨어지고 어딘가 놀러 갈까?라는 말이라면 반응은 다르겠지만.


아, 여름이 오는구나. 여름은 오고 있고 돈은 벌어야 하고 마냥 피해 다닐 수는 없고 피부과에서 써준 약도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는 약이라서 자주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하는데 어쩜 좋을까. 어떻게 올해 여름과 햇빛을 피해 다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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